에너지와 도파민, 그리고 공신력과 편의성
수메르는 문자와 숫자를 행정의 핵심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문명입니다. 이 시기부터 금과 은이 본격적으로 화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지요. 학계에서는 화폐가 잉여 생산물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원시국가와 고대국가는 지금처럼 잉여 자원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농업기술은 낙후되어 있었고, 운좋게 약간의 잉여가 생기더라도 국가와 신전이 대부분을 가져갔습니다. 잉여가 존재할 수 있었던 집단은 일부 상층부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다수의 피지배층이 교환을 했다면, 그것은 잉여를 주고받기 위함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실제로 수메르 점토판에는 노동자에게 곡물로 지급해야 할 급여를, 곡물 부족으로 인해 은으로 대체 지급했다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사실은 구조적으로 잉여 자원이 희소했으며, 화폐는 부족을 해결하고 행정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등장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반면 서민들은 화폐를 이용해 곡물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화폐는 무엇보다 에너지를 구매하는 수단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칼로리, 즉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화폐는 필수적인 도구였던 셈입니다.
화폐의 등장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으로 급여제도와 시장입니다. 과거에는 노동이 주로 부역이나 의무에 가까웠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노동은 정량화된 가치로 환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가 숫자로 기록되고, 그 대가를 화폐로 지급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이라는 공간도 형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모이고, 필요한 것을 사고파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정보를 정량화함으로써 새로운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든 도구였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화폐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다수가 기근과 가난에 고통받는 동안, 소수의 왕족과 귀족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아도는 식량과 화폐로 다양한 사치품을 구매했지요. 그 목적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고, 단순한 욕망 충족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시기 귀족의 호르몬 변화를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현대의 연구를 바탕으로 추론하면 이들이 사치품을 소비하면서 얻은 것은 결국 도파민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즉, 이들은 화폐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뿐 아니라 보상과 쾌감이라는 정신적 자원까지 함께 구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화폐는 다른 의미에서도 에너지를 사는 수단이었습니다.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필요한 노동력을 화폐로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자신의 노동량을 줄이고, 자신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행위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왜 금과 은이 화폐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곡물이나 물품보다 부피가 작고 운반이 편리하며, 눈에 띄게 화려하고 반짝여 기대감을 주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금과 은은 정확한 무게 측정이 가능하고, 상하거나 부식되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누적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여기에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면서, 금과 은은 자연스럽게 화폐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물물교환에 비해 질량과 부피가 낮다는 점은 에너지와 도파민을 획득할 수 있는 활동반경과, 한번의 거래로 획득가능한 에너지와 도파민의 양을 높여준 것으로 판단합니다. 많은 질량을 취급해야하는 물물교환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거래가 힘들어집니다. 부피가 많이 나갈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역시 에너지 효율성의 문제로 환원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화폐는 에너지와 도파민을 구매하는, 정량적이고 공신력 있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화폐의 등장으로 인해 속성으로 에너지를 누적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기존보다 많은 양의 거래가 가능해진 것으로 판단합니다. 화폐의 이런 특징은 수메르 시대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극대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