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머신 마케도니아

변하지 않는 문명의 법칙

by 미친생각

국가라는 폐쇄회로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에너지 조달이 필요합니다. 이 때 자기유지를 위한 에너지 조달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부에서 생산량과 소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 다른 하나는 무역이나 전쟁을 통해 외부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입니다.


수메르의 국가 수립 이후 많은 국가는 이 구조를 이해하고 각자의 가치관을 구축했습니다. 어떤 국가는 민주주의와 해상무역을, 어떤 국가는 의술을, 또 어떤 국가는 천문학과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며 자신들의 회로를 강화해왔습니다. 하지만 변방에 위치한 마케도니아라는 국가는 이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문명의 발생지에서 멀었기 때문에 최신 문명 시스템의 전이 시간이 늦었고, 이는 마케도니아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가 가진 공통된 한계였습니다.


그리스는 대체로 첨단 문명 도입이 늦었고, 산악지형과 좁은 경작지 때문에 내부 에너지 생산이 부족한 구조였습니다. 지리적 고립으로 폴리스라는 소규모 도시국가가 난립했고, 이 구조는 내부 에너지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때문에 전쟁과 약탈을 통한 외부 에너지 확보라는 필연적 회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타 문명에 비해 전쟁 빈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전쟁이 잦으면 경험이 축적되고, 이는 그리스인이라는 하드웨어에 전투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끊임없이 패치되는 효과를 냅니다. 이 환경에서 잔존한 국가는 하드웨어적으로도, 소프트웨어적으로도 전쟁에 최적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환경 속에서 잔존한 국가가 마케도니아였고, 마케도니아는 필리포스 2세라는 CPU와 알렉산드로스라는 GPU를 탑재하며 고대 최강의 전쟁머신으로 재탄생합니다. 전쟁머신의 프롬프트는 단 하나입니다. 싸움과 정복.


필리포스가 죽기 전까지 발칸과 그리스 본토는 이미 대부분 마케도니아에 통합되었습니다. 필리포스 사망 후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란, 인도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까지 통합하며 인류 최초의 초대형 제국을 구축합니다. 이 규모는 이후 약 1,500년이 지나 징기스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갱신됩니다.


세련된 문명국가들은 이 촌스럽고 무식한 전쟁머신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무너졌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1년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사용한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빠르게 이동하고, 정확히 적의 CPU인 수도를 타격하는 것이죠.


당시 수도에는 왕이 주둔했을 뿐 아니라, 왕을 대체할 회로나 복구 장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행정, 자원, 기록, 정통성이 한 지점에 집중된 구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도라는 CPU가 무너질 경우 백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제국 전체가 자동으로 정지했습니다.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정복은 문명에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국가의 에너지 획득 수단에는 전쟁과 약탈이라는 수단이 존재합니다. 이 수단을 효율적으로 실행없거나, 방어할 수 없는 국가는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전쟁에 특화된 하위 문명 앞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빈틈없는 행정 기술도, 현란한 과학 기술도, 상대방을 녹여버리는 외교무역도, 결국은 상대방의 강력한 주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변치않는 패턴으로 판단되네요.


문명의 최전선 메소포타미아도, 민주국가 아테네도 결국 마케도니아에 무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