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구조를 통해 정교해 진다.
헬레니즘 이후의 로마는, 당시 세계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공화정 국가였습니다. 국가를 소유하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기능을 수행하는 자리만 존재하는 구조였습니다.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집정관조차 두 개의 자리를 두어 서로를 견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이점은 정치 체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로마의 군사 체계 또한 매우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군체계를 설명하기에 앞서, 로마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로마와 그 동맹국을 포함한 이탈리아 반도의 인구는 약 4백만에서 5백만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는 고대 기준으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규모였습니다. 여기에 비옥한 토지까지 더해지며, 로마는 막대한 농업 생산력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석유나 기술이 주요 자원이지만,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단연 식량이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는 인간이 거의 유일한 국가 자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반도는 고대 기준으로 매우 축복받은 땅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외부 세력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탐낼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를 향한 침략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쪽의 갈리아, 동쪽의 그리스, 남과 서를 가리지 않고 외부의 압력이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명분은 언제나 그럴듯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자원과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로마는 이러한 침략을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를 차근차근 구축해 나갔습니다. 성벽은 점점 길고 높아졌고, 군사적 목적의 도로망은 반도 전체를 촘촘히 연결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점차 방어에 적합한 형태의 하드웨어를 갖추게 됩니다. 이 구조 위에 대규모 병력이 더해졌습니다.
로마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성인 남성 다수는 잠재적 병력으로 편입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귀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군 경험이 없는 귀족은 요직을 차지하기 어려웠고, 집정관 자리는 전투 경험뿐 아니라 특출난 전공 없이는 오르기 힘들었습니다. 국민이라는 하드웨어에 전투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설치되고 갱신되는 구조였던 것이죠.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탈리아 반도는 하나의 거대한 요새로 기능했고, 국민 다수는 체계적으로 군사화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군단 편제라는 결정적인 구조가 더해집니다. 전투 중 장교가 전사하더라도, 병사가 전사하더라도, 공백은 새로운 인간으로 채워 넣으면 되는 구조였습니다. 개인의 손실이 곧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상태를 국가가 보다 정교해진 정보처리장치로 진화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도로와 성벽이 에너지가 흐를 수 있는 유형화된 정보 구조이며, 숙련된 병사와 장교는 이 위를 흐르는 에너지의 개념이라는 것이죠. 이 구조는 인구 증가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는 강해졌고, 주변의 어떤 국가도 로마를 쉽게 넘볼 수 없게 됩니다.
반면, 당시 대부분의 국가는 상비군이나 용병 체제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동원 가능한 병력의 규모와 지속성에서 로마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로마를 노린 국가가 존재했습니다. 바로 카르타고입니다.
헬레니즘 직후의 카르타고는 서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특히 해군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의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고, 리스크는 감당 가능해 보였으며, 얻을 것이 많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264년, 로마와 카르타고는 시칠리아를 두고 충돌합니다. 당시 로마는 해군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카르타고의 판단은 합리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로마가 전쟁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로마의 시스템은 빠르게 대응 능력을 끌어올렸고, 약 20년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승리합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계산 범위를 벗어난 국가였던 것입니다.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타고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기원전 218년, 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은 상당히 눈여겨봐야 하는 전쟁으로 판단되는데요. 국가 시스템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인간 영웅과 시스템의 대결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알렉산드로스 이후 등장한 또 하나의 전쟁의 신, 한니발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의 전술은 오늘날에도 군사 교범에 실릴 정도로 정교합니다. 다만 이 전쟁은 카르타고 국가 전체의 전폭적인 합의 속에서 시작된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한니발 개인과 그 집단의 전략적 판단, 그리고 단기적인 승리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빠른 결말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한니발은 로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코끼리를 포함한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 침투 경로는 상상 밖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공성전을 피하고 평지 전투를 유도했으며, 그 전투들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로마라는 도시의 점령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공성무기도 거의 갖추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목표는 로마를 지탱하던 이탈리아 반도 동맹 구조의 붕괴였습니다.
전쟁의 신, 한니발은 분명히 의도한 성과를 냈습니다.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와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 집정관과 다수의 귀족 장교가 한니발 군에 의해 전사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였다면, 이 정도 손실은 곧 국가 붕괴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그러했듯, 인간 중심의 국가는 인간의 죽음에 취약합니다. 그러나 로마는 달랐습니다. 병사가 죽으면 새로운 병사를 채워 넣었고, 지휘관이 죽으면 또 다른 인물을 그 자리에 올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자리는 유지되고, 기능은 계속되었습니다. 한니발은 이 지점에서 좌절합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집정관을 두 번이나 제거했음에도, 로마는 무너지지 않았고 동맹 또한 와해되지 않았습니다. 한니발은 약 기원전 203년까지 이탈리아에서 로마와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의도한 성과는 분명히 거두었으나, 의도한 결말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시스템은 에너지가 흐를 수 있는 구조가 먼저 구축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로마는 국민의 판단과 행동 구조를 군인에 적합하게 배선했고, 그 배선 위로 식량으로 얻은 에너지가 흐르며 개인 단위의 병력이 생성되었습니다. 군단 편제라는 구조를 통해, 병사라는 최소 단위만 확보된다면 언제든 기능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고대 국가의 근본 에너지였던 식량, 그리고 그 식량을 섭취해 국가의 에너지가 되는 국민이 충분히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구조 위에 에너지가 흐를 때 기능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알고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이것은 구조를 통해 더욱 의도한대로, 또는 정밀한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존재 유무는 정보처리장치의 첫 번째 조건이라 판단됩니다. 반도체도, 인간도, 식물도, 곤충도, 국가도 같은 맥락의 정보처리장치입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차이는,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가 얼마나 구조화되어 있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알고리즘의 차이를 불러일으키며 행동의 차이로 이어지지요. 한니발은 기존 국가와 로마의 알고리즘 차이를 간과하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패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