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회로의 이동과 로마 공화정의 균열
카르타고 정복 이후 대규모로 유입된 카르타고 노예는 로마의 농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귀족들의 라티푼디움 확장은 자영농 몰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토지를 잃은 시민과 도시 빈민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이 변화로 국가의 병역 시스템 자체가 붕괴 상태에 들어갔다고 판단됩니다. 당시 군 복무 자격은 토지 소유 시민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사회 구조의 변화는 또 다른 인식을 낳았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피지배층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빈부 격차는 심화되었고,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시민이 증가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졌습니다. 이러한 불만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으로 표출되었으나, 그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두 변화를 계기로 로마는 점차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토지가 없는 시민도 군 입대를 허용받게 되었고, 군 장비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닌 장군을 중심으로 한 지역 귀족과 정치 엘리트가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복무 이후 병사들은 국가가 아니라 이들로부터 토지와 전리품을 지원받고, 정착까지 보장받게 됩니다. 단기 징집에 기반한 시민군 체계는 사실상 붕괴되었고, 로마의 군대는 직업 군인 중심의 구조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병사의 고용자는 국가였으나, 이 시점 이후 그 자리는 장군으로 바뀌었다고 판단됩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이 등장합니다. 각 지역의 귀족과 정치 엘리트들은 도시 빈민의 생존 유지를 위해 곡물 배급을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시민들은 점점 배급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 배급은 투표를 통해 권력을 부여받는 귀족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치적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시민의 입장에서 국가는 더 이상 자신의 에너지와 도파민을 맡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장군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는 전공을 올려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었다면, 이 시기 이후에는 더 많은 전투에 참여함으로써 더 많은 영지와 전리품을 확보하는 것이 이들의 핵심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전공은 여전히 필요했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부가적인 옵션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이네요.
이 시기 이후, 애국심을 가치관으로 삼을 수 있었던 집단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의미 있는 가치였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민과 병사에게 애국심은 먼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더 가까운 산은, 자신을 직접 먹여 살리고 보호해주는 직속 엘리트였기 때문이죠.
로마 시민과 장군의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고, 당연히 움직임도 달라졌습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알고리즘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관점에 따르면, 국가의 알고리즘이 바뀐 것이죠. 개인의 생각이 개인의 알고리즘이며, 국민의 행동은 국가의 알고리즘이 된다고 보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반대로 다수 시민의 알고리즘 속에서 국가는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포에니 전쟁의 찬란한 승리가 로마에 이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았고, 그 흐름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