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체급 차이를 극복한 국가 알고리즘의 등장

by 미친생각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서유럽의 권력 구조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방 제후의 권력은 점차 약화되고 왕권은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이는 왕이 절대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제후들이 전쟁과 재정 부담 속에서 서서히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4세기,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116년에 걸친 전쟁이 발생합니다. 역사는 이를 백년전쟁이라 부릅니다. 이 전쟁은 단순히 중세 서유럽에 만연했던 봉건 제후들 간의 충돌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에 기반한 전쟁으로 넘어가는 신호탄에 가까웠습니다. 완성된 근대 전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전쟁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최초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충돌은 백년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구조적으로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066년, 잉글랜드를 세운 윌리엄 1세는 서프랑크 왕국의 제후 신분으로 다른 국가를 정복해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왕에 대한 제후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이중적 지위는 그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모순적인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여기에 플랑드르 지역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간의 군사 동맹 문제까지 겹치면서 충돌을 피하기 힘든 구조로 굳어집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대적하기 어려운 국가였습니다. 백년전쟁이 발발한 14세기 기준으로 프랑스의 인구는 잉글랜드의 세 배에서 네 배에 달했고, 농업 생산력 역시 비교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체급만 놓고 본다면 잉글랜드가 프랑스에 맞서 오래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프랑스를 상대로 100년에 가까운 전쟁을 치르며 치명적인 붕괴를 피했습니다.


이는 우연이나 일시적인 군사적 행운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두 국가가 가진 중앙집권 알고리즘의 수준 차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앙 권력의 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핵심 원리는 심플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가 중간에서 새지 않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중앙에 집중될 수 있는 구조인가 하는 점입니다. 화폐로 구매하는 것이 에너지와 물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화폐를 국가의 주요 에너지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조세제도를 통해 중앙집권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잉글랜드는 국가 차원의 조세 구조가 비교적 일찍 정교하게 설계된 국가였습니다. 봉건적 잔재가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편에 속했고, 세금은 제후를 거치지 않고 중앙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밀라노나 나폴리 같은 도시들이 도시 단위에서는 잉글랜드보다 훨씬 부유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관리 구조가 부재했기에 도시의 부는 이탈리아 전체의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했습니다. 잉글랜드는 부 자체가 많았던 국가는 아니었지만, 부를 국가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매우 높은 국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십자군 전쟁 이전에 비해 왕권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잉글랜드만큼 탄탄한 중앙집권 알고리즘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세금은 여전히 제후 단계에서 소멸되거나 누수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실상 국세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잉글랜드가 국세 개념을 실질적으로 도입한 초기 국가였다면, 프랑스는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던 셈입니다. 이것이 규모에서 압도적인 프랑스를 상대로 잉글랜드가 버틸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로 보입니다.


잉글랜드의 중앙집권 구조는 세입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세출에 대한 방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십자군 전쟁 이전,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세출 구조는 여전히 왕의 개인적 소비에 가까웠고,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제후들에게 각종 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왕권이 강화된 것처럼 보였던 현상의 실상은 왕이 강해졌다기보다 제후들이 약화된 결과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달랐습니다. 13세기 마그나 카르타를 기점으로 조세와 세출은 점차 국가 중심으로 계획되었고, 귀족으로 구성된 의회의 승인 없이는 발효될 수 없는 구조가 자리 잡습니다. 돈의 관리 방식부터가 다른 국가였던 셈입니다. 여기에 백년전쟁으로 막대한 현금이 필요해지자, 왕의 요청과 의회의 동의에 따라 비상 조세와 추가 지출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로써 잉글랜드의 국가 개념은 영토 중심에서 조세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국가의 개념은 땅의 집합에서, 에너지를 모으고 배분하는 알고리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차이가 체급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팽팽한 싸움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아마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 역시 전쟁 이전까지는 프랑스의 승리, 혹은 압승을 예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본격적인 충돌의 계기도 프랑스가 먼저 제공했습니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잉글랜드가 이렇게 오래, 그리고 이렇게 효율적으로 버텨낼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