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제국, 그리고 테르시오가 만든 유럽 패권의 구조
프랑스의 거침없는 남하에 위협을 느낀 이탈리아는 주변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이 응했고, 교황령과 밀라노, 베네치아 등이 함께하면서 이른바 베네치아 동맹이 형성됩니다. 일진일퇴의 전쟁을 거듭하던 중, 1519년 스페인 왕 카를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되면서, 스페인과 제국, 네덜란드를 아우르는 거대한 합스부르크 권력이 형성됩니다. 이로써 프랑스는 사실상 합스부르크 세력에 둘러싸인 구조에 놓이게 되었고, 이탈리아 전쟁은 결국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이탈리아 패권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귀결됩니다. 결국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고, 1559년 전쟁은 마무리됩니다. 이때 체결된 카토-캉브레지 조약을 통해 스페인은 이탈리아에서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게 되죠.
이 전쟁이 합스부르크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세 가지 요인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바로 제국의 형성,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본격화된 은 유입, 그리고 테르시오라는 편제입니다. 이제 이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은의 유입입니다. 이탈리아 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492년, 콜롬버스는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출항합니다. 목적은 아시아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곳은 아시아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정작 콜롬버스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아시아에 도달했다고 믿었지만 말이죠. 어쨋든 스페인은 새로운 대륙을 확보했고, 전쟁 후기에 이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포토시 은광이 발견되면서, 아메리카 은의 유입은 점점 가속화됩니다. 스페인은 은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차입을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은 스페인이 전쟁을 지속하고 압박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시기 세금 구조만 비교한다면, 프랑스가 장기전에 더 유리한 구조였습니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국민을 대상으로 직접세를 걷는 상시 과세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세입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시 스페인은 거래세와 간접세 비중이 높았고, 전쟁이 길어질 경우 특별세나 차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형성되기 이전의 스페인은 장기화된 전쟁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특별세는 잦아졌고, 대출은 늘어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반란까지 일어나기도 했죠. 물론 프랑스도 전쟁으로 인해 재정 압박을 받았지만, 스페인에 비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519년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되고 합스부르크 권력이 형성되면서 판도는 달라집니다. 스페인은 신성로마제국과 네덜란드를 아우르는 광대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한 영토 확대를 넘어 재정 규모의 확대와 군사 동원력의 증가를 의미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상업력과 제국의 인적 자원은 스페인의 전쟁 수행 능력을 뒷받침해주는 요소가 되었던 것이죠. 여기에 아메리카 은이 더해지면서, 재정적 숨통이 트이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테르시오라는 편제입니다. 이탈리아 전쟁 과정에서 스페인은 파이크병과 화승총병, 그리고 로델레로를 통합한 보병 편제를 발전시킵니다. 당시 프랑스는 중기병 중심의 전투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보병은 상당 부분 용병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테르시오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스페인과 프랑스는 일진일퇴를 거듭했지만, 이 편제가 정착되면서 프랑스 기병에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해진 것이죠. 테르시오 편제는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하며 17세기 초반까지 유럽 최강의 타이틀을 유지하게 됩니다.
결국 광대한 정치적 기반, 은이 제공한 재정적 여력, 그리고 혼합 병과 보병 편제라는 군사적 혁신을 바탕으로 합스부르크는 이탈리아 전쟁 이후 유럽 최강의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곧 스페인의 문제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승리의 구조가 어떻게 취약성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해 이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