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쟁 이후 인플레이션의 구조
이탈리아 전쟁 이후 합스부르크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항구는 분주했고, 시장은 활기를 띠는 듯 보였습니다. 유럽은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나 이 활기의 이면에는 또 다른 흐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초 유럽은 본격적인 인플레이션 구간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연구는 1500년부터 1560년 사이 곡물 가격이 임금 상승률을 상회했음을 보여줍니다. 가격이 상승한 것은 곡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직물과 공산품, 사치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가격이 임금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실질임금은 점차 압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현상을 단순한 통화 팽창이나 전쟁 비용의 문제로만 보기보다는, 정보처리장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 유럽은 흑사병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곡물 생산도 늘어났지만, 생산 증가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절대적인 식량 부족 상태는 아니었지만 생산과 수요 사이의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고, 작은 충격에도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간헐적인 가격 폭등과 지역적 기근은 반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타이트해진 구조 위에, 아메리카로부터 은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은 이탈리아 전쟁 이후에도 여러 전쟁에 관여하고 있었고, 유입된 은은 기존의 채무 상환과 군인 급여, 물품 구매 등을 통해 시장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전쟁 지출은 유동성을 확산시키는 경로로 작동했고, 그 유동성은 지불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세비야, 안트베르펜, 런던과 같은 항구 도시와 상업 중심지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불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타이트한 식량 생산 구조 속에서 곡물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으로 우선적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이 다른 지역의 기근을 직접적으로 초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분 구조가 특정 지역과 계층의 취약성을 더욱 확대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 수출 금지, 가격 통제, 비축 곡물 방출, 배급 제도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고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 가격 폭등과 폭동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거래를 음지로 이동시키거나, 분배를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결국 국가 차원에서 가격 상승을 억누르기 위해 조치를 취해도, 개별정보처리장치의 기본 설정값을 억누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설정값의 이름은 탐욕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미시적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는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존재합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전근대 문명의 근본 동력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당시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의 모든 입력, 연산, 출력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는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식량을 통해 에너지를 얻었고, 그 에너지가 노동으로 전환되었던 것이죠. 석유도, 전기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문명의 입출력과 연선을 가능케하는 에너지원은 오로지 식량이었습니다. 따라서 식량 가격의 상승은 문명 운영 비용의 상승을 의미했습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군인의 유지 비용이 오르고, 생활비가 오르며, 행정과 전쟁의 비용이 함께 상승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재화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구조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계, 인간, 로봇 등 문명의 입출력 구성요소 또한 다양합니다. 따라서 에너지원도 다변화되어 있습니다. 원유, 전기, 가스 등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가 존재하며, 특정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그 충격은 분산될 수 있습니다. 최근 특정 국가의 쌀값 상승이 전분야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 처럼말이죠. 오히려 현 시대는 전기나 원유의 가격 상승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만큼 문명의 프롬프트를 수행의 중심축이 이동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문명이라는 정보처리장치에서 불안정성이 발생하고 확대될 때, 인간이라는 개별정보처리장치는 그 틈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합니다. 이것은 때때로 가격상승을 유발하기도 하지요. 어떤 분야의 가격 상승이 전범위로 확대된다면, 그것이 문명 활동의 근간일 가능성을 염두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