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명 질서에 올라서다.

국가가 은행의 평가를 받기 시작한 순간

by 미친생각

전반적인 유럽 국가가 인플레이션으로 당황하고 있던 시기, 당혹감을 넘어 존망의 기로에 선 집단이 등장합니다. 바로 유럽 최강의 제국, 합스부르크입니다. 합스부르크는 이탈리아 전쟁 이후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 오스만, 프랑스와의 충돌이 이어졌고, 군대와 군수품을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제국은 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차입을 반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차입금은 항상 제때 상환되지 않았고, 1557년을 시작으로 수차례 지급정지가 선언됩니다.


저는 여기서 제국의 파산 자체보다, 돈의 본질과 은행 구조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수메르 시기의 화폐 관련 글에서 설명했듯이, 저는 돈을 잉여의 교환 수단이라기보다는, 부족을 메우고 행정을 편리하게 만드는 장치로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고대 수메르에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곡물이 부족해지자, 은으로 대체 지급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처럼, 합스부르크 또한 지금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미래의 화폐를 활용했습니다. 여전히 돈은 부족을 메우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특이점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와 은행의 관계라는 점입니다.


은행의 형태는 고대에도 존재했습니다. 사원이나 환전상이 간단한 예금과 대출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 구조는 중세로 넘어오며 점차 복잡해집니다. 결제를 대신해주거나, 교황청의 자금을 운용하고, 국경을 넘어 신용을 이전하는 기능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왕실에 대한 대규모 대출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구조는 아직 단순했습니다. 특정 군주에게 집중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었고, 군주가 상환하지 못하면 금융가가 직접 타격을 받는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국가의 채무불이행과 관련하여 강제적인 조치를 겪은 금융집단이 존재했으며, 백년전쟁 시기에는 영국의 채무 불이행으로 상당한 위험에 처하게 된 금융가도 발생했습니다. 이때까지는 국가와 금융은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며 구조가 달라집니다. 합스부르크 시기의 금융은 더 이상 기존 형태의 대출이 아니었습니다. 신대륙에서 은이 도착할 일정이 담보가 되었고, 은행은 장기 대출 대신 단기 대출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했습니다. 여러 금융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확산되었고, 리스크는 이자율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위험이 높으면 금리는 올라갔고, 상환 가능성이 낮아지면 조건은 더 엄격해졌습니다. 은행은 특정 국가에 모든 자금을 집중하지 않게 되었고, 여러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위험을 분산했습니다. 이로써 한 국가의 몰락이 금융가의 파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약화되었습니다. 합스부르크가 지급정지를 선언했을 때, 은행은 합스부르크에 대한 조건을 조정하고, 금리를 높이고, 차입 구조를 재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을 목격합니다. 과거에는 왕이 돈을 갚지 않으면 금융집단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근대부터는 왕이 돈을 갚지 못하면 국가의 신용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세계 질서는 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지요. 은행이 안정적으로 대규모의 화폐를 관리할 수 있게 되고, 국가가 여기에 대한 신용을 지켜야만 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은행은 더 이상 국가 아래 위치한 기관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은행 알고리즘의 변화는 근대 시대의 변화 중 가장 핵심적이고 중추적이라고 판단되네요. 문명 질서의 중심에 은행이 편입된 이상, 화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거울삼아, 돈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