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포병과 이탈리아 성벽

정보 관점에서 보는 전쟁 공방의 진화

by 미친생각

1494년 가을에 이탈리아로 남하하기 시작한 프랑스는, 1495년 2월에는 무려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나폴리까지 점령하고 맙니다. 당시 프랑스 군은 청동으로 만든 기존보다 경량화된 야포를 끌고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중세 방식의 성곽으로 방어하던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포병 앞에서 취약함을 드러냈습니다. 과거에는 수개월 이상을 각오해야 했던 공성전이, 프랑스의 포격 운용으로 수 주 단위로 단축되기 시작합니다. 이 소문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졌고, 이탈리아 내부는 상당한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포병의 활약과 성벽의 무기력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부터 이탈리아 전쟁에 이르기까지, 공격 방식과 무기는 많은 변화를 거쳤고 이를 방어하는 방법도 공격 방식에 맞춰 변화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활과 쇠뇌가 등장하면서 공격의 범위가 넓어졌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구조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병력의 배치나 구성 역시 마찬가지고요. 기병에 대응하기 위해 창병이 발달했고, 보병에 대응하기 위해 성벽은 높아졌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를 어떻게 조직하고, 그것을 어떤 구조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설명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같은 체격, 같은 무장 수준의 보병이 평지에서 전투를 벌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쪽은 대형 없이 마구잡이로 돌격하고, 한쪽은 로마 보병의 격자 대형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합니다.


마구잡이 돌격은 개별 병사가 가진 힘이 분산되어 전달됩니다. 반면 구조화된 대형은 동일한 인원이라 하더라도 충격을 보다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집단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톨의 모래는 가볍지만, 압축된 사암은 단단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대형은 다른 방식의 효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노르만 기병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쐐기 모양의 대형은 선두가 충격을 가하고 후열이 압력을 보강하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적 진형을 분리하거나 균열을 내기에 유리한 형태입니다. 마치 못이 뾰족한 형태로 만들어져야 나무를 잘 관통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리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보다 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면, 전투는 훨씬 유리해집니다. 상대의 물리력이 나에게 닿기 전에 타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활과 쇠뇌는 이러한 시도를 발전시킨 무기였습니다. 이후 화약의 등장은 활의 사거리와 파괴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야포는 돌을 던지는 투석기를 넘어, 금속 덩어리의 질량과 속도, 강도를 결합해 성벽의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죠. 프랑스는 이를 이전보다 가볍게 제조하여 기동성을 높임으로써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것입니다.


공격 방식의 진화는 수비의 진화를 수반합니다. 중세 시대까지 이어졌던 공격방식은 트레뷰셋이나 발리스타 같은 투사형 무기와 공성추나 땅굴을 이용한 공격이 주요했습니다. 때문에 더 높고 두꺼운 성벽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방어구조가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포병이 등잠함과 동시에, 높은 성벽은 더 큰 표적이 될 뿐이었고, 아무리 단단한 돌을 쌓아 올려도 더 단단한 쇠구슬 앞에서는 조각이 될 뿐이었죠. 성벽은 야포에 호환되지 않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이탈리아 전쟁 이후 유럽의 성벽은 돌과 흙을 섞어 낮게 쌓은 구조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에 있어서, 그리고 일상에 있어서도 물질의 구조는 기능을 결정합니다. 전투에서는 한 사람이 최소 구조 단위가 될 수 있고, 집단은 하나의 구조가 됩니다. 금속과 돌 역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어떻게 배열되고 조직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냅니다. 이 구조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무기와 전술은 지속적으로 진화해 온 것입니다. 같은 자원으로, 같은 에너지로, 더 적은 손실로, 더 높은 확률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구조를 발전시킨 것이야 말로 전술과 무기의 진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방어 구조 역시 그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진화해 왔습니다. 공격은 방어를 뚫을 만큼, 방어는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정보는 구조를 이루고, 구조에 의해 에너지가 흐른다는 점, 그리고 에너지가 흐르는 방식이 알고리즘을 결정한다. 이것이 제가 보는 정보처리장치와 정보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의 변화과정은 문명의 변화과정이기도 합니다. 전쟁도 마찬가로, 무기와 전술로 분류된 정보가 어떤 식의 에너지 흐름을 얼마만큼 발생시키느냐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탈리아 전쟁의 프랑스 포병도 이 흐름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