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갑작스럽지만 이유 있는 강력한 등장
지금까지 메타바이오를 읽어오신 분들께서는 스페인의 등장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스페인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스페인이 자리한 이베리아 반도는 오랫동안 국가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집중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대 초반의 유럽을 논하는 순간, 스페인을 빼놓고 유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근대 유럽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스페인의 형성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지리적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북쪽이 피레네와 칸타브리아 산맥으로 막혀 있고, 내륙은 메세타 고원이라는 광활한 고원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도답게 대부분의 외곽은 바다와 접하고 있으며, 대서양과 지중해를 동시에 끼고 있는 구조입니다. 북쪽은 산으로 차단되고, 외곽은 바다로 열려 있는 형태이지요. 이 구조로 인해 이베리아의 정보는 해양을 중심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이베리아는 서고트의 활동 무대가 됩니다. 그러나 서고트 왕국은 반복되는 내전으로 국가의 에너지가 중앙으로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 틈을 타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 세력이 침공했고, 서고트 왕국은 결국 붕괴합니다. 다만 일부 잔존 세력이 북부 산악지대로 이동하여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훗날 스페인의 씨앗이 됩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무슬림이 장악한 이베리아는 ‘알안달루스’라고 불렸는데요. 알안달루스는 기존 유럽과는 다른 통치 알고리즘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슬람의 정복 통치 체계인 디미 체계에 편입되기 때문입니다. 디미 체계는 무슬림이 군사와 지배 권력을 담당하고,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병역 대신 세금을 납부하는 보호민 지위를 갖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정복 활동이 활발하던 이슬람 제국의 전형적인 통치 방식이었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아랍계 엘리트가 다수의 지배 권력을 차지하였고, 기존 고트계 귀족 일부는 자리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생산과 세금 납부 계층으로 편입됩니다. 군사력은 이미 상당 부분 무슬림화가 진행된 북아프리카 지역, 특히 베르베르 병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756년, 알안달루스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중동 본토에서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를 전복시키자, 탈출한 우마이야 왕족이 이베리아로 건너오게 됩니다. 그 인물이 바로 압드 알 라흐만 1세입니다. 그는 코르도바 토후국을 수립하며 알안달루스를 본토와 분리된 독자적 정치 체계로 재편합니다. 이후 라흐만 3세가 스스로 칼리프를 선언하고 코르도바 칼리프국을 세우면서, 이베리아의 무슬림은 더욱 이질적인 알고리즘을 가지게 됩니다.
코르도바 칼리프국은 한동안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군사 전문 집단에 의존하는 통치 구조 속에서 중앙 권력은 점차 군사 엘리트와 분리된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이슬람 세계 전반에서 나타났던 군사 전문 엘리트 중심의 통치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만 알안달루스의 군사 엘리트들은 국가의 호황 속에서 자원을 충분히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외부로 소모시킬 대규모 전쟁의 압력도 부재했습니다. 그 결과 군사 세력의 에너지는 분산되지 않고 축적되었으며, 세력 확대의 가속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중앙이 통제하지 못하면서 엘리트 간 경쟁이 심화됩니다. 결국 1031년 이후 칼리프국은 수십 개의 소왕국, 즉 타이파로 분열됩니다.
이 분열은 북부 산악지대에 잔존해 있던 기독교 세력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됩니다. 기독교 세력은 이전부터 이베리아 수복을 시도해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르도바의 분열 이후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 재수복 운동을 레콘키스타라고 부르는데요. 1492년, 기독교 세력은 그라나다를 함락시키며 완전한 수복을 이루게 됩니다. 수복 직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 통합된 권력 기반이 형성되는 결정적 계기가 발생하는데요. 외부 세계는 점차 이 결합 왕국을 스페인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랜 재정복 전쟁으로 전투 기술이 지속적으로 패치되고, 반도를 통합하면서 막강한 에너지를 보유하게 된 국가가 근대 초기의 스페인이었던 것이죠. 오랜 전쟁으로 전투 소프트웨어를 패치하고 인근 세력을 통합하며 에너지를 키우는 패턴은, 스페인 이전부터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로마가 그랬고, 마케도니아가 그랬고, 프랑크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근대 이전까지 제가 스페인을 본격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근대 이전의 이베리아는 단일 국가가 아니라, 분열과 재편을 반복하던 공간이었습니다. 프랑크나 동로마와는 전혀 다른 진화 경로를 거쳤고, 유럽의 전형적인 알고리즘과도, 중동의 정통 체계와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럽의 서쪽 변방에 존재했기에 정보의 유입은 한발 늦었고,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죠.
레콘키스타 이후, 이제 이베리아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유럽 질서를 흔드는 새로운 변수로 등장합니다. 이 갓 통합된 국가는, 백년전쟁을 통해 중앙집권을 강화한 유럽의 정통 강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