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돌이 Jun 29. 2015

담임의 말 한마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

조종례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쩌다보니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서울 개그'를 비롯해서 주로 언어유희들이다. 수업이 재미없다는 녀석들에게 잼은 냉장고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담임을 우습게(!) 여기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지만 버석거리는 고3 생활에 그나마 설핏 웃어넘기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 농담의 무게를 실감할 때가 있다. 내가 무심코 뱉었던 말을 기억하거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1학년 담임을 할 때, 어쩌다 대학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웃겨볼 요량으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정색하며 말하는 내 표정에서 진심(!)을 읽어버린 몇몇의 아이들이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자랑까지 했고, 학부모 상담 때 진지하게 물어보는 어머님을 만나서 꽤 진땀 흘렸던 적이 있다.


오늘은 아이들 몇몇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매점가자는 얘기를 하길래 "난 XX!"이라고 외쳤다. XX는 매점에서 파는 음료수다. "샘, 뭐라구요?"라며 눈 흘기는 아이들에게 "아니, 매점 간다며. 난 XX이라고." 하곤 교무실로 내려왔다. 종례 시간에 교실에 올라가니 교탁에 그 음료수가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뭐냐고 물으니 내 꺼란다. 아까 말하지 않았냐고. 민망한 마음에 손사레까지 쳤지만 이제와서 환불하기 귀찮기도 하니 그냥 드시란다.


뜨끔했다. 비단 오늘 뿐만 아니라 그간 내가 했던 말들 중에 나 혼자만 농담이었을 뿐 이 녀석들에게 진담으로 느껴진 게 어디 한 두번 뿐이었을까.


담임을 하게 되면서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고 있었지만 잊을 때가 많았다. 한 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살펴보아야겠다. 말로 받은 상처가 크다는 걸 나도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내가 녀석들에게 그러고 있진 않은지 새삼 부끄러워진 하루다.


그런데, 사실 이 녀석들은 내 진담도 농담으로 여길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긴 하다. 내 잔소리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걸 보면.

매거진의 이전글 단절되는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