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한동안 어수선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침묵. 누군가 두꺼운 담요로 그들의 머리를 덮어버린 듯 사위가 고요했다. 그들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생소해도 윌 스미스가 나오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익숙하실 겁니다. 하지만 책과 영화의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책의 기본 모티브 정도만 차용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영화나 책이나 줄거리의 기본 골격은 같습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구에 마지막 남은 인간이 바로 윗글에 등장하는 ‘나’입니다. ‘나’ 이외의 모든 생물체는 모두 ‘좀비’이지요. 그런데 식욕과 같은 본능만 남아 있는 줄 알았던 이 ‘좀비’가 인간처럼 어느 순간 이성과 감정을 지니게 된 겁니다. 그들도 진화하게 된 것이죠.
책의 마지막은 주인공인 로버트 네빌이 좀비 무리에게 잡히는 장면입니다. 늘 좀비 무리를 두려워하고 경멸했던 네빌은 자신을 둘러싼 좀비들의 눈빛에서 충격을 받습니다. 좀비들의 눈에서 '인간인 자신에 대한 공포'를 발견한 것이죠. 지구에 남겨진 유일한 인간인 자신만이 단 하나의 정상이라고 믿던 그는, 어쩌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좀비 무리가 정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간 관리자만 되더라도 집단을 경영하다 보면 의사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일정이 몰아쳐서 빠른 의사결정을 강요받을 때에는 결국 효율성을 좇게 되는 경우가 많죠. 다수결을 자꾸 강요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목소리 작은 사람들, 혹은 소수의 의견은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 제가 풀어놓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혹은 다수와 소수가 지닌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혹시 우리가 다수라고 해서 폭력에 좀 더 가까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이성의 지닌 다수의 좀비 무리와 지구에 남은 단 한 명의 인류, 그중 정상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