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조용한 서점의 품에서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약속을 앞둔 짧은 기다림 속
스며드는 시의 속삭임
외로움을 품은 찰나와 설렘 속에서
시는 감정의 틈을 따스하게 메워준다
하루의 시작과 끝
감정의 파도 사이에서
시는 끊어진 생각들을 잇는
다리가 되어준다
비 오는 날, 서점에서 시를 읽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도시의 소음이 빗소리에 묻히고, 주변의 분주함이 고요한 책장 사이에서 잦아드는 그 순간. 저는 종각역 지하의 반디앤루니스에서 그러한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약속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시는 저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의 기다림은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는 짧은 시간 안에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하며, 저에게 그 순간만의 특별한 감정을 선물했습니다. 약속이 늦어진 짜증이나 혼자라는 외로움마저도 시를 읽는 동안에는 따뜻한 위안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시는 그런 매력이 있었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드러내 주고, 몰랐던 내면의 소리를 깨닫게 해 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죠.
특히 비 오는 날, 서점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를 읽는 일은 그 자체로 작은 예술이었습니다. 우산을 한 손에 든 채로 습한 공기를 느끼며 시집을 펼치는 것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경험이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삶의 공백을 채우고 내면의 틈새를 다정하게 감싸 주었습니다.
삶에는 종종 시간이 비어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 멈춘 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찰나, 혹은 하루의 끝자락에 마음이 텅 비는 느낌이 들 때. 저는 그럴 때마다 시를 찾았습니다. 시는 단순히 시간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고 감정을 잇는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종각역 서점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시의 매력은 여전히 제 삶 속에 살아 있습니다. 시는 여전히 제 곁에서 따뜻한 친구처럼 다가와 제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말해 줍니다. 이 글이 시를 사랑하지 않던 이들에게도 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는 우리 삶의 작은 틈새에 자리 잡아 우리를 위로하고, 삶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특별한 친구니까요.
윤태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