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위를 산책하는 내 손끝
새로운 길로 향하려 했으나
'자동완성'은 이미 그려진 길을 조명한다
나를 보며 속삭이는 과거와 미래의 말들
나를 안다고 확신하는 그 기계의 논리에
편안함 속에서도 괘씸한 마음이 스며든다
내 생애도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닐지
덜컥 겁이 나서 잠시 손가락을 멈춘다
무력감과 두려움이 샘솟으면서도
스스로 길을 완성하리라 다짐해 본다
순간, 화면 너머에 있는 기계의 심장이
내 떨림을 알아챈 것만 같다
키보드 위를 누르며 문장을 완성할 때, 자동완성 기능은 마치 제가 하려던 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친절히 제안합니다. 처음엔 이 기능이 무척 편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동완성된 단어와 문장이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손끝의 자유를 제한하고, 제 생각을 그들만의 틀에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죠.
자동완성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자동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경로를 따라가며, 시스템이 제시한 선택지들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가 제공하는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택이란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생각은 무력감으로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다짐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이 될지 알고 있습니다. 자동완성된 길은 항상 편리하고,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편리함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자동완성은 단순히 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제 습관과 기록을 기반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기능이 단순한 편리함의 도구를 넘어 저를 평가하고 제한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동완성된 문장 속에서 저는 자유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비록 그것이 더딘 길이라 할지라도, 나만의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자동완성된 경로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윤태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