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수입 없는 문과 부부의 제주살이 #2

by 쓰디쓴


2019년 12월 세계일주를 떠났던 우린,

코로나를 만나 3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지만

고향인 대구가 아닌 이곳, 제주섬으로 왔다.


4주년 결혼기념일을 앞둔 2019년 겨울, 대구의 신혼집이며 가구며 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떠난 세계일주였다. 여행기간도 2년을 생각했기에 남편은 한창 자리 잡아가고 있던 영상 프로덕션의 사업자도 폐업 신청을 했다.


나 역시 한창 일할 나이에, 한창 방송일에 물 오른 연차인데 지금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으냐, 6개월 정도면 대타 작가를 구해줄 테니 6개월만 여행 다녀와라, 다녀와서 일하다가 또 여행 떠나고 싶으면 또 한 3개월 6개월 다녀오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까지 말씀해주셨던 당시 라디오프로그램 담당피디님의 참으로 감사한 만류를 뒤로하고 떠난 터였다. 고로, 대구엔 당장 우리가 돌아갈 집도 직장도 없었다.


또 우리가 세계일주를 중단하고 돌아올 무렵(2020년 3월)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었던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도 '한 3개월에서 길어도 6개월이면 곧 잠잠해지겠지' 어림짐작했다. 그때의 우리에겐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세계일주를 떠날 수 있을 때까지 임시로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코로나를 피할 수 있는 한적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으며 잠시 멈춘 세계일주 여행의 설렘을 이어갈 수 있을 만한 곳은 없을까? 이 질문에 '제주'보다 더 좋은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초록의 자연과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제주섬에 세계일주 배낭을 풀고, 임시 표류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섣불렀던 어림짐작을 비웃듯 하루하루 점점 더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국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수가 날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 '임시 표류'라 칭했던 우리의 제주살이에 물음표가 하나 둘 셋 넷 더해지기 시작했다. 세계일주를 다시 못 떠나게 될 거란 절망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제주에서 임시표류가 아닌 진짜 표류생활을, 그것도 꽤 장기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설렘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제주살이" 이 네 글자는 설렘,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로망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리면 현실의 삶엔 '돈'이 들기 마련이었다.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지출하게 될 최소한의 생활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비용은 세계일주 경비로 잡아둔 예산에서 빼 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2020 신창풍차해안도로 산책로에서>


그즈음이었다. 우리가 제주에 온 지 겨우 2주쯤 지난 어느 날 오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김PD님으로부터. "제주도에 있다며... 잘 지내는 거야? 큰맘 먹고 여행 떠났는데 이게 무슨 일이라니. 그래, 이제 앞으로 계획은 있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반가움과 걱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SNS를 통해 우리가 귀국 후 제주도에 머물고 있단 소식을 알게 됐다고 했다.


"지금 상황을 보니까 최소 6개월은 못 나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제주도에서 지내지 싶어요."


"그렇구나... 대구 올 계획은 없는 거지? 그래, 음... 그러면...! 거기서 라디오 일 다시 하는 건 어때?"


당시 대구는 일찍이 신천지 여파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터라, 대한민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 방역에 있어 날을 세우고 있는 도시였다. 때문에 방송가에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 및 방송국 운영에 있어 반드시 스튜디오나 사무실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실상 작가가 대구에 있으나 제주에 있으나 별 상관이 없는 시기였던 것이다. 특히 라디오프로그램의 경우엔 더더욱.


한번 고민해 봐, 라며 그녀는 내게 생각할 시간으로 1주일의 말미를 주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은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언제라도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출국할 기세인 남편! 당시 나는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 참에 제주살이를 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 역시 생각보다 제주살이를 만족스러워하긴 했지만 그에겐 못 다 한 '세계일주'의 아쉬움이 더 커 보였었다. 근데 내가 덜컥 일을 맡아 버리면, 최소 6개월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될 터였다. 그래도 방송 일이란 것이 못 해도 '한 개편'은 맡아서 해 줘야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시스템인데, 보통 개편은 6개월 주기로 이뤄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당장이라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즉시 배낭을 다시 꾸릴 기세였으니... 나로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또 제주살이의 방향과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또한 '꿈의 제주살이'를 꿈꿔왔었다. 그것은, 일 관련 스트레스와 스케줄에 얽매인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유와 낭만'이 있는 제주살이를 의미했다. 지난 2주간의 제주살이는 (전화를 받던 아침까지만 해도) 꿈의 제주살이에 가까웠었다. 요란스레 울려대는 알람이 아닌 수다스럽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상쾌한 기분으로 잠을 깨고, 잠에서 깬 뒤에도 몸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한껏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곤 "오늘은 뭐 해 먹지?" 남편이랑 아점 메뉴를 상의한 뒤, 천천히 아점을 차려 먹고, 바다를 보러 가거나 오름을 오르거나 카페에 가거나, 무엇을 할지 언제 움직일지, 모두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일 스케줄'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만 한다. 당시 내가 맡게 될 가능성이 큰 프로그램은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FM프로그램이었는데, 이전에도 맡은 적이 있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과 품이 들어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가장 기본 적인 것만 놓고 봐도 원고 쓰는 데 최소 두세 시간. 또 그 원고를 채울 아이템을 준비하고 생각하는 데 최소 한두 시간.


그럼 실전을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가동해볼까. 아마 나는 전날 저녁에 아이템을 준비하기 위해 한두 시간을 쓸 것이고, 당일 아침엔 원고를 쓰기 위해 두세 시간 책상에 앉아 사투를 벌일 것이다. 그리고 생방송이 진행되는 (매주 '월화수목금'요일마다) 정오부터 2시간 동안은 홈페이지의 '온에어 듣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방송을 모니터 하며 선물 당첨자에게 당첨문자를 보내는 등 청취자 문자 관리도 하겠지. 또 방송 중에 (방송 전후로도) DJ와 카톡을 통해 소통해야 할 일도 생긴다. 작가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코너별 작가가 따로 있지 않아서, 메인작가 1명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담당작가다. 따라서 작가가 할 일의 1순위인 '원고'는 기본, 그 외에 작가가 해야 할 일 '플러스 알파'가 따라 붙는다. 매주 그 주의 당첨자 명단을 정리해 상품관리 담당자에게 전달해줘야 하고, 요일별 게스트 원고 관리 및 소통, 주말 녹음코너 준비를 위한 그 주의 신곡 서치, 홈페이지에 남겨진 사연들을 모두 읽고 소개할 사연들을 골라내 각색하고 역시나 당첨자 관리... 매주 반복되는 상시 업무가 이 정도. 간헐적으로는 설 추석 다가올 때면 명절특집, 창사기념일엔 창사특집, 크리스마스이브엔 성탄특집, 1월 1일엔 새해특집 등 때마다 각종 특집도 준비해야 한다. 특집을 준비하면 작가는 평소보다 곱절은 더 품을 들여 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집 페이를 따로 챙겨주는 것도 아니다. 또 작가의 일이 어디 그 뿐인가. 새로 들어오는 협찬처와도 조건 조율부터 관리까지 담당작가가 해야 한다. 쓰고 보니 진짜 뭐 이렇게 하는 일이 많은 것인가!!!


시뮬레이션을 마친 나는 머리를 절레 절레 저었다. 일을 시작하면 내가 바라고 꿈꾸었던, 실제로 당장에 실현되고 있었던 자유와 낭만의 제주살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