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짓는 아내와 영상 찍는 남편
매달 정해진 금액이 따박 따박 들어온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나도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은 있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기 전,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기간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월급이 60만 원이었던가. 주5일 근무에 오전 10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면 칼퇴근이 가능했고, 틈틈이 책을 읽거나 공부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월급이 아니었음에도 나름 만족하며 일할 수 있었고, 그렇게 1년간 '매월 같은 날 정해진 금액을 통장에 입금 받는 기쁨'을 12회에 걸쳐 맛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쭈욱 ‘고정된 월수입’ 같은 건 없었으니까. 작가 연차별로 정해진 ‘주급’은 있지만, 여느 직장인들의 월급날처럼 주급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어서 돈 들어오는 날이 항상 들쭉날쭉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최근까지 16년을 프리랜서 방송작가로만 살았다.
현재, 고정수입이 없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그는 ‘가구 회사’에 다니고 있는 월급쟁이 직장인이었다. 그래봤자 당시 입사 2,3년차였기에 연봉이래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때 나는 이 남자가 ‘월급 받는 사람’인 것도 내심 좋았다. 혹시라도 더 깊은 사이로 발전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한 명은 나처럼 고정수입 없는 프리랜서가 아닌 ‘월급 받는 사람’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내 상상력은 언제나 무한하고 또 무용하다. 연애 1주년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그는 내게 차분한 말투로 폭탄 선언을 했다.
"자기야... 나 회사 그만 두고, 영상 쪽 일 다시 시작해봐도 될까?"
나는 "...어?" 하며 순간 피식 웃었던 것 같다. 화가 나진 않았고, 화 낼 일도 아니었다. 그의 말을 비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좀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는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현실적 무모함'보다는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부딪히겠다는 그의 '의지'와 '용기'에 포커스가 맞춰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꽤 드라마틱하고 흥미로운 전개였다. 현실적인 문제로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따분한 직장생활을 하던 남자가 어느 날 사표를 쓰고 (영화는 아니지만 꿈에 가까운) 영상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려 한다니! 나는 이왕이면 하고 바랐던 미래의 월급쟁이 남편을 잃게 될 지경에 놓여 있었지만, 어차피 그는 나의 가상의 남편이었으므로 월급쟁이는 쿨 하게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흔쾌히 OK! 그의 결심에 지지를 보냈다. 그때 우리 나이 서른 둘. 충분히 용감하고 낭만적일 수 있는 나이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껏 내가 '믿고' 또 '밀고' 있는 것 한 가지.
'내가 이 남자의 가슴에 불화살을 당겼노라.'
'그의 꿈에 대해 귀기울여 들어줬던 내가 그의 낭만적 결심과 영감의 근원인 뮤즈다!'
나는 그거면 충분한 문과적 인간이었다.
2022년 6월 현재.
우리는 고정수입 없는 프리랜서부부로
제주에서 2년 3개월 째 살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놓고 봐도 어떤 달은 총수입이 50만원대. 어떤 달은 400만원대. 가장 적게 번 달과 가장 많이 번 달을 예로 든 것인데, 물론 남편과 나의 수입을 합친 결과이다. 프리랜서 부부이기에 결혼해서 단 한 번도 수입이 들쭉날쭉 하지 않았던 달은 없었다. 이젠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우리가 살던 대구가 아닌, 연고도 기반도 없는 제주섬이라는 점, 그럼에도 기존에 하던 일로 밥벌이를 하며 이곳에서 2년 3개월 째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면 우린 늘 같은 말을 넋두리처럼 되뇌곤 한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진짜..."
"그러게, 용케 먹고는 살고 있네..."
생즉사 사즉생(死卽生 生卽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는 그 말처럼, 지금 우리가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며 사는 것도 어쩌면 '김밥장사의 행복'을 각오한 덕분일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의 일이다. 제주살이를 하게 된 계기인 '세계일주'를 결심하던 당시, 남편은 여행에 대한 내 의지를 다짐 받으려는 듯이 "일 다 접고, 다 처분하고 이렇게 떠나면, 나중에 돌아와서 빈털터리 돼 있을 수도 있는데 정말 괜찮겠어?" 하고 물었었는데, 그때 나의 답은 이랬다. "응! 우리가 함께면, 맨바닥부터 뭘 시작해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난 너랑 함께면 김밥장사를 해도 행복할 거야."
진심이었다. 사지 멀쩡한 남녀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마저 돈독한 사이라면, 둘이 힘을 합쳐 이 세상에서 못 해낼 것이 뭐가 있고, 못 이겨낼 것이 뭐가 있을까. 비록 세계일주는 '코로나'라는 생각지 못한 변수를 만나 3개월 만에 멈춰서게 됐지만, 그 바람에 삶의 로망이었던 '제주살이'를 하게 됐으며, 다행히 아직 빈털터리는 되지 않은데다, 제주에서 2년 3개월 째 그럭저럭 입에 풀칠도 하며 살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고정 수입은 없지만 그에겐 내가 있고, 나에겐 그가 있으니 우리는 무적이다.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날들이다.
참고로 남편은 김밥을 잘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