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나타난 의문의 부부

by 쓰디쓴


동네에 어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올레길 돌담 너머로 낯선 얼굴들이 보이기에 이사 왔느냐 물었더니 그렇다며 멋쩍게 웃는다. '가만, 이 집 주인은 서울 가 있는 걸로 아는데. 혹시 부부가 집을 산 걸까?' 참지 못하고 대뜸 물었더니 '연세'라며 또 배시시 웃는다. 고향은 대구. 연세 계약은 1년. 아이는 아직. 나이는 30대 후반 동갑내기 부부.

그건 그렇고 이런 집은 세를 놓으면 연세를 얼마나 받으려나. 우리집 밖거리도 비어 있는데, 그냥 놀리느니 이 집처럼 연세라도 놓아 볼까.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시내 아파트나 빌라도 아니고 노친네들만 사는 이런 조용한 동네에, 이 집 같은 경우 최근 리모델링을 싹 했다 해도 그래봤자 구옥이니까 '주인 입장에서 한 300은 받아야겠지?' 싶었는데 세상에나. 부부는 내 계산보다 두 배도 넘는 돈을 주고 세를 얻었단다. 물정 모르는 젊은 부부래도 그렇지. 집 주인이 연세를 많이도 불렀다 싶다. 괜히 내가 다 속이 상해서, 너무 비싸게 주고 들어온 것 같다 했더니 가구며 TV 세탁기 냉장고 등 기본 세간살이가 어느 정도 갖춰진 '풀옵션'이라며 헤죽 또 웃는다. 아유 그래 뭐, 본인들 주머니 사정에 맞고 조건이 흡족했으니 계약을 했겠지. 어찌됐든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니 좋다고, 오며가며 또 보자고 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이도 있으니까 얼른 아이부터 가지라!"







'그날'의 풍경을 동네 삼춘(*제주에서 남녀구분 없이 '어르신'을 뜻하는 말) 시점에서 내 나름의 상상을 더해 그려봤다. 그날은 우리 부부가 제주살이를 시작한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2020년 봄이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집에서 제주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동네 삼춘들은 "낳기만 하라. 애는 우리가 봐주켜"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우리 부부의 2세 소식을 대놓고 기대하시지만, 현재 우리 부부는 딱히 2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그러면 '딩크족'인 거예요?"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남편과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딩크족은 아닌데, 당장은 계획이 없어요."

그냥 아직은 둘이 노는 게 더 좋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만 나이로는 서른 여덟, 아홉. 한국 나이로는 어느덧 마흔. 당장 우리가 둘만의 삶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쉼 없이 흐를 것이고, 하루 하루 더 출산이 힘들어지는 나이로 향해가겠지. 그러다 언젠가 아이를 갖고픈 마음이 들어도, 정작 그때는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으리란 생각도 한다. 어쩌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후회가 두려워 일단 아이부터 갖기엔, 임신과 출산 육아가 너무 큰일이란 걸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들어 어렴풋이나마 짐작한다. 모든 선택엔 책임과 대가가 따르기 마련. 지금의 선택으로 인해 훗날 어떤 책임을 지고 후회를 하게 될진 알 수 없지만, 오늘의 우리는 '단둘'인 지금의 우리가 좋다. 어쩌면 부모가 되기엔 아직 철이 덜 든 걸지도.




모르긴 몰라도 동네 삼춘들의 눈엔 참 요상한 부부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는 제법 먹었는데 아이는 없어, 평일 주말 대중 없이 마당에서 잡초를 뽑는 등 집에 머물 때가 많은 걸 봐선 어디 꾸준히 출근하는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집안에 돈이 많아서 놀고 먹는 사람들인가, 근데 또 그렇다기엔 차가 '레이', 그것도 중고로 구입했다지. 신랑각시 둘 다 행색도 막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다니지도 않고. '가이들(걔네들) 도대체 정체가 뭐라?' 이렇게 생각하셨대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삼춘들은 그 궁금증을 거의 1년 가까이 참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마을에 이사 오고 한 1년 쯤 지난 어느 날에야. 오가며 종종 마주치는 한 삼춘께서, 마당 수돗가를 정리 중이던 남편에게 담장 너머에서 넌지시 물어오셨다. 근데 여기서 무슨 일 하며 사느냐고. 언제든 말씀 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우리였기에, 남편은 최대한 간결하게 우리의 정체에 대한 짧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아, 원래는 대구에서 저는 영상 만드는 일 하고, 와이프는 방송작가 일 했었는데, 세계일주 떠났다가 코로나 때문에 3개월 만에 임시로 머문다고 온 게 제주도였어요. 근데 코로나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지금도 여기서 영상이랑 방송 일 조금씩 하면서 먹고 살고 있어요."

"아하..."


짐작컨대, 이 이야기는 금세 동네 모든 삼춘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