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이드 Oct 20. 2024

12. 아마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사고 소식을 듣었을 때, 가장 먼저 언니와 친구 몇 명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껏 이렇게 무슨 일이 나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 적이 별로 없었다. 화가 나거나 너무 슬플 때는 요동치는 마음을 혼자 보낸 뒤, 조금 가라앉거든 얘기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당시 무슨 마음으로, 왜 전화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났다.


전화를 한지 얼마 안 되어 병원으로 언니와 친구 두 명이 달려왔다. 가방은 어떻게 챙겼는지,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도 희미했다. 언니집에 도착하니 친구들도 곧이어 따라왔다. 아마 차에 다 탈 수 없어서 그랬던지, 차를 가지고 와서 그랬던지. 형부가 시켜준 죽을 먹고 잠깐 누웠는데, 필름이 끊긴 듯 잠들었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언니집에서 지냈다.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아서였다. 같이 사는 동생들에게 간간히 연락이 왔다. 그중, 남자친구가 죽기 전날 나와 시간을 많이 보냈던 동생이 안부를 물으려 종종 전화를 했다. 전화가 울리는 걸 알면서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날 그 동생과 코엑스에서 만나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 해 먹고 대화를 나눴는데, 그 중간중간 남자친구에게서 왔던 전화들이 너무 생생하게 자꾸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동생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콜백 대신 문자로 답을 남기다가 한 번씩 꾹 참고 전화를 했다.


 뇌사 상태의 그에게 달려있던 호흡기를 떼는 날이 다가왔다.   결혼을 한 사이가 아니라 부담이 될까 봐 주변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하나씩 보낼 수가 없었다. 다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작업은 필요했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면, 나중에 올 질문들이 나를 깨부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랑은 잘 지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고맙게 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 남들로만 가득 차있는 그곳에, 나를 보러 와준 사람들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웠다. 비가 무섭게 많이 오던 시기였는데, 그들이 우산과 카디건이 되어 준 느낌이었다.


 

 이후로도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전구를 환하게 켠 오징어잡이 배가 밤바다에 구명조끼를 입고 허우적대는 나를 잠시 배에 태워줬다가, 몸을 녹이라고 불도 쬐어주고 밥도 먹여준 뒤, 다시 바다에 내려놓는 것 같았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이건 내 착각이고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애초에 구명조끼를 준 것도 그들이고, 작은 뗏목도 내어주고 비상식량도 챙겨줬지만 다시 구명조끼만 챙겨 바다에 뛰어든 건 나였다. 조끼를 벗을 용기가 없었지만, 염치없고 얌체 같아 다시 배에 태워달란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둥둥 떠다니다가 누군가 손을 내밀면 다시 잠깐 배에서 쉬어 갈 뿐이었다.


 차갑고 우울한 기분이 내 생활을 잠식해가고 있던 중에 문득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반짝하고 행복의 문이 열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그와 여름휴가를 계획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정한 것은 유럽여행. 여행할 나라를 정했더니 그가 나에게 했던 해외여행 이야기와 그의 모습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해봤다는 이야기, 축구를 좋아해 유럽 리그를 챙겨보던 이야기,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 영상을 보내며 가보고 싶다고 들떠있던 모습,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좋아하던 사람.


 다시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차갑고 쓸쓸했다. 어떤 생각을 해도 원플러스원으로 슬픈 생각이 드니, 너무 피곤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평생 행복은 꿈도 꾸지 말라는 저주에 걸린 것 같았다.


, 나 뭐. 행복하긴 글렀다고?

- 응. 아마도, 그런 거 같은데?

 

작가의 이전글 11. 안 들은 귀 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