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털어놓기 어려웠던 창업 N 년 차의 고민을 나눕니다.
유명하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중소기업·스타트업 제품,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주목하세요.
대체 불가한 제품이 되어,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 핵심.
유명 브랜드 로고나 최저가 경쟁 없이도 팔 수 있어요. 내 제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아이템 하나로 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고, 몇 번의 시제품을 거쳐 1차 물량도 안정적으로 내놓았어요. 처음으로 참가해 본 산업 박람회는 뿌듯함과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소비자들도 내 아이디어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명함을 가져가거나 샘플 견적 요청하는 바이어들도 만났고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 소위 ‘사업 대박’이라는 기적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연이어 터져 수출길도 막혔고, 경기 한파에 사람들은 지갑을 더 굳게 닫기 시작합니다. 자꾸 오르는 원자잿값은 이해해 주지도 않고, 비싸다는 반응만 보이는 소비자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해요. 제 머릿속은 ‘진짜 여기가 끝이구나. 접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복잡합니다. 먹먹함이 가슴속마저 꽉 채워, 점점 직원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습니다. 전 어떡해야 할까요?
TIP : 제조업 창업 기업의 영원한 숙제, '매출 만들기'
그 어느 때보다도 고난한 시기, 데스밸리*의 입구에 홀로 고립된 제조업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유통 판로와 매출입니다.
B2B던 B2C던 제품이 팔려야 자금이 돌고, 자금이 돌아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신제품 개발도 하고, 마케팅에도 더 투자해 볼 수 있으니까요.
*Death Valley: 스타트업의 초기 자금이 다 떨어져 재정적으로 힘들고, 시장 진입이 어려워 도산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시기.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립니다.
애석하게도 긴 불황 속 소비시장은 나날이 양극화되어 가는 중입니다. 사람들은 아주 비싼 명품이 아니면 최저가에 로켓 배송까지 되는 상품에 지갑을 열어요. 우리와 같은 중소 제조업,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제품에게 유독 가혹합니다. 대량생산되는 최저가 제품들과 가격 경쟁을 하자니 출혈만 남고, 고급화 전략을 유지하는 일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죠. 막대한 예산과 업계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브랜딩, 마케팅하는 대기업이나 글로벌 브랜드와는 경쟁 상대도 되지 못합니다.
얼마나 유명한가, 혹은 얼마나 저렴한가. 이 두 가지 경우의 수에서는 돌파구를 찾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반짝하고 매출이 오를 수 있지만, 두 전략 모두 지속 가능하진 않으니까요.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시장. 정녕 창업 기업 제품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일까요? 가격과 브랜드 로고의 싸움으로 보이는 소비 양극화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니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체 불가’라는 빛이요.
평소에는 제일 저렴한 것을 찾으면서도, 명품이나 대기업 제품에는 거침없이 결제하는 이유는 제품의 대체 불가성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품이 싸거나 비싸다는 이유에 있지 않아요.
단순히 물건의 용도로서 필요한 제품은 쉽게 대체되기 마련입니다. 나의 재정 상태에 따라 언제든 최저가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어요. 반면 내가 진짜 가지고 싶은 제품은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구매하게 됩니다. 이 제품을 대체하여 나에게 그만큼의 만족감을 줄 제품이 없기 때문이에요. 필요한 물건이 아닌 갖고 싶은 물건에서의 가격 장벽은, 잘못된 블록을 건드린 젠가처럼 너무나도 쉽게 무너집니다.
단순히 비싼 명품, 인기 브랜드만이 특별하고 대체 불가한 건 아니에요. 모두가 아는 연예인이 광고하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대체 불가한 만족감과 가치를 전할 수만 있다면, 어떤 제품도 그 특별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체 불가성은 내 제품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을 전달해 줄 제품의 발자취, 스토리(story)들이 모여 만들어 냅니다. 세상에 감자빵이라는 제품은 많을 수 있지만, 감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부모님의 감자밭으로 귀농해 버린 청년 농부가, 감자를 직접 키우고, 몇 년간 레시피를 연구해 만든 감자빵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거든요.
<미래 경영의 지배자들>의 저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이미 20년 전부터 ‘앞으로는 달걀을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달걀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스토리가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주는 시대의 중심에 살고 있습니다.
TIP :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으로 만들기, 이렇게 해 보세요
가격을 1000원 더 내리기 전, 상세 페이지에 ‘이 제품이 왜 1000원 더 비쌀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 주세요.
큰 예산 들여서 광고 찍기 전에 SNS 혹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 과정을 먼저 공유해 보세요.
대단한 게시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제품이 걸어온 길, 탄생한 스토리,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내 목소리로 전하면 충분합니다. 남들이 아니라 나여서 할 수 있는 말들로 내 제품을 소개하고, 홈페이지를 채우고, 상세 페이지를 만들어 보세요.
어쩌면 딱 한 번의 액션으로 눈앞의 매출 부진을 해결하고, 대표님들의 두 어깨의 짐을 덜어주는 마법 같은 솔루션은 아닙니다. 버텨야 할 때도 있고, 손해를 감수하며 결정해야 할 때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매번 ‘우리가 대기업도 아닌데 너무 비싸서 안 사는 걸까? 경쟁업체 B사보다는 가격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반복된다면, 지금부터라도 경쟁사나 대기업에서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찾기 시작해 보세요.
대체 불가한 제품이 되어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 명품과 대량생산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기전에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저렴한 선택지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제품을, 이 험난한 여정의 유일한 무기로 삼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와디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글 이은아 편집 전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