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나의 기여에서 시작된다.
2017년 3월 2일.
밤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이태원 한 언덕가에 위치한 맥주집을 대낮에 찾아간다. 아직 날도 춥고 한참 미팅을 핑계로 낮술을 즐기던 때라 맥주집에서 미팅을 한다는 것이 새삼 기뻤던 것으로 기억된다. 낮에는 비어있는 공간에서 무언가 레시피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처음 대면한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명함을 교환한 후 이들의 사업 이야기를 듣는다.
치킨 (CHICKEN)
은퇴하신 분들이 치킨 집 차린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였는지, 이 젊은이 3명이 치킨집을 창업한다는 것에 걱정부터 하게 된다. ('나도 나름 창업자들 많이 만나본 사람이다'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치킨이 나온다. 좋아하는 맥주도 나왔다. 그런데, 닭날개만 나온다. 그리고 각각 찍어 먹을 수 있는 소스를 4-5개 정도 꺼내온다. 1인 1.5 닭 정도는 해야 닭 좀 먹는다고 자부했던 내게, 다리와 가슴살은 온데간데없고 닭날개만 나와 많이 당황스러웠다. 소스는 무엇인가. 치킨은 후라이드가 진리가 아니었던가?
의심을 가득 품고 한 입 먹었다. 앞에 앉아있는 세 남자가 나를 보며 좋은 테스터를 만난 듯 숨죽이며 나의 테이스팅을 지켜본다.
"오 이거 특이해요. 이런 건 멕시코? 캐나다? 이런 곳에 먹는 거 아닌가??"
옆에 함께 온 팀장님은 "이 소스 네이밍은 00000으로 하는 게 더 좋겠는데요?"라며 가히 맛집 고수 같은 면모를 내뿜는다.
그렇다.
이들은 윙을 요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만의 염지법을 개발하고 또 소스 역시 다양하게 준비해 선택권을 넓혔다. 자신들을 윙(wing) 스타트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다소 억지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들은 닭요리를, 특히 윙을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이태원 맛집으로 불리며 외국인 고객들에게 유명해지더니, 수요 미식회에 소개된 후 평일/주말 할 것 없이 웨이팅을 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바로 이태원에서 윙 문화를 만들어가는 '네키드윙즈'의 이야기이다.
바야흐로 기여의 시대이다.
네키드윙즈 멤버들이 윙을 연구하던 시절부터 관계가 있던 내게, 이들이 수요 미식회에 등장한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팀장님, 저희 내일 수요미식회 나와요. 늦게 말씀드려서 미안해요"
무엇이 미안하단 말인가? 이 윙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고 하는데.
'그때 내가 테이스팅 하면서 얼마나 많이 의견을 줬는데'
'네키드윙즈 매장 오픈 전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왠지모를 뿌듯함은 물론이요, 무언가 이들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 달에 최소 3번 이상 (비싼) 윙을 먹는다. 참고로 네키드윙즈는 투자형 펀딩을 진행하였고 나는 거금 500,000원을 네키드윙즈에 투자하여 매번 갈 때 마다 10%의 할인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것도 나름의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다.
정리해보면, 내가 네키드윙즈에 '기여'하고 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1) 이들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고민한다. 다음 소스는 어떤 맛인지, 매장 확장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이를 위한 자금은 어느정도가 필요한지. (상수점은 왜 망했는지...)
2) 이들의 창업스토리와 현재 어떻게 성장해나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3) 앞서 언급한 것 처럼, 한 달에 최소 3번 이상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생각보다 이렇게 자주 가는 식당은 구내식당 말고는 별로없다)
4) 네키드윙즈 대표자와 시도때도 없이 대화를 나눈다.
더 많이 윙을 먹기위한 핑계로 보일 수 도 있겠지만, 난 내가 기여하는 네키드윙즈에서 연구하고 만들어낸 윙을 먹는다. 윙 하나에 이들의 연구개발 시절을 생각하며, 또 다른 윙 하나에 이들의 더 큰 성장과 확장을 기대하며. 그렇게 더블 플래터를 비우고 늘 그렇듯이 계산을 하고 나온다.
당신은 어떤 기여를하고 있는가?
[사진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