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자고 싶은 것처럼 읽으면 쓰고 싶어지니까요
그런 사람이 있다.
본인의 재능과 실력을 깎아내리고 의심하는 사람. 빛나는 작품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사람. 혹시나 하고 누군가에게 내보일 때마다 잘 벼려진 그들의 비판이 자신을 글을 해체하고 결국 마음마저 도려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 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상상으로 전해지는 두려움 따위 괜찮았다. 어쨌든 빛나는 작품은 내 손에 있는 게 아닌가.
이를 증명하려는 발싸심에 매년 공모전에 도전했으나, 탈락의 고배를 연이어 마셨다. 투고한 원고 또한 그러했다. 대부분 회신조차 없었다. 노력의 결괏값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했는데 그 반대였다. 목표한 지점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차갑게 '휘발'되고 있었다.
차곡차곡 모아 왔던 글들이 그저 종이 더미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허수한 마음 달랠 길 없었다. 긴 시간 이어진 패배감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다음엔 더 큰 좌절감을 마주할 것 같았다.
양손으로 잡아 신나게 늘여 왔던 건 내 입을 즐겁게 할 치즈가 아니라 다름 아닌 팽팽한 고무줄이었다는 걸 알았다. 고민은 어렵지 않았다. 더 늘어나 아프기 전에 놓아버렸다. ‘탁’하고 내 손을 때리는 것을 신호로 혼자 토라지기로 다짐했다. 재능과 실력은 이미 충분히 증명한 셈이 아닌가. 내게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그렇게 삐져버리기로 했다. 사실은 글을 조금씩 비공개로 쓰고 있었지만.
며칠 전 첫째 아이가 ‘아빠 거’라며 펜과 노트를 갖다 줬다. 물론 이제 막 세 살 된 아이가 그것을 정말 내거라 생각해서 가져다주진 않았을 테다. 본인이 실컷 가지고 놀다가 치워달라는 의미 정도였을 테다. 그래도 아이의 그 말에 내내 앙가조촘했던 마음이 곧게 일어나 기지개를 켜려 했다. 그제야 불편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오래전, 작은 공모전에 입상한 것을 떠올렸다. SNS에도 글을 올리며 응원을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긍정적으로. 맞아. 그때 그랬지. 나만의 언어를 원했지. 며칠을 고민하면서 쓴 글을 지금의 아내에게 보여주며 신나게 기뻐했었지.
우습게 들리겠지만 누군가의 날카로운 평가에 조금만 속상해하고 단단해져보기로 했다.
또 좋지 않은 결과로 상처받기야 하겠지만, 그 중독적인 몰입에 다시 빠져 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그냥, 꾸준히, 쓰는 사람, 이고 싶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