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아주머니
어머니와 요양병원에 있던 때였다. 우리 병실 화장실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한 주 동안은 다른 병실에서 지내야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병실을 옮긴다는 게 사소한 일이 아니다. 골절로 수술한 환자에게는 이동하는 그 잠깐도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항암 치료로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원래 있던 병실을 벗어나는 건 환자의 불안을 키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경우 두 쪽 모두에 해당했다.
이런 경우에는 보호자로서도 가끔 억울한 일이 생긴다. 나의 내밀한 번거로움을 눈치챈 병원 직원의 시선이 느껴질 때인데, 그 시선엔 대개 두 가지의 반문이 함축되어 있다. ‘환자가 짐이 많으면 얼마나 많으냐’와 ‘보호자가 그것도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냐’ 정도다. 그러나 별거 없어 보여도 짐을 옮길 때면 두 손으로는 늘 부족하다. 또 보호자는 충분히 잘 수 없는 데다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늘 피곤 속이다. 그 천근만근인 몸으로는 뭘 하든 별거 아닌 게 아닌 일이 되니 힘들기 마련이다. 어머니 보호자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표정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건만, 그날도 어김없이 직원의 그런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얼른 어색한 미소로 마무리하고,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실에 아무도 없었는데, 다시 짐을 챙겨 오는 사이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있었다. 잠시 외출하고 오셨는지 두꺼운 점퍼를 목 끝까지 올려 입고 그 위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마스크까지 하고 계셔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색을 달리한 몇 겹의 외출복이 바깥 날씨를 말해주었는데 그래도 퍽 덥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마스크를 벗은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하얀 피부는 아주머니를 더 아픈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아주머니는 말도, 표정도 없었다. 우리를 등지고 시적시적 외출복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등에서는 모든 신경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불편한 긴장이 느껴졌다. 굳은 표정에서는 지금 자신에게 절대로 말을 걸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마저 느껴졌다. “밑에 공사한답니까?” 그녀는 이미 전달받아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짧은 물음으로 치환해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보다 몇 살이 위였고, 위암이라고 했다.
나를 한번 훑고 나더니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대뜸 소주는 얼마나 마시냐고 물었다. 으레 그렇듯 나는 한 병 정도 마신다고 답했다. 내 답을 듣고는 젊은 사람이 그것밖에 못 마시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냐며 나무라듯 목소리가 커졌다.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은 매일 두 병씩 마셨다고 했다. 그렇게 된 건 남편과의 불화로 가정이 행복하지 않아서 그랬다며 진정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그녀는 딸 하나를 낳아 남편과 잘 사는 듯했으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그렇듯 그녀도 딸을 보며 모진 날들을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어이 아이 앞에서도 드러난 남편의 폭력성은 그녀의 참고 살아갈 결심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맞불 작전에 나섰고, 너 죽고 나 죽자며 매일 두 병씩 술을 마셨다.
그때는 죽을 각오로 그랬는데 이제는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머리는 딸이 밀어준다는 낮은 음성의 혼잣말과 함께. 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언니라고 하면서 번호도 교환하고 금방 친해졌다. SNS 프로필 사진 속 그녀는 꽃밭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퇴원할 때까지도 볼 수 없었던 미소였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이 어디 있겠으며, 사는 것이 어디 쉽겠냐마는, 본인이 지향하는 삶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꼈다. 그녀는 그러한 일탈과 위악으로 상대도 고통받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무감한 남편을 보면서 동시에 고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았을 것이다. 자신을 죽이고 있는 건 남편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은밀하게 자각하면서도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를 본인이 모두 떠안게 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신이 멈추지 못하니 누군가는 멈춰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살기는 싫었을 테니까.
어릴 때 친구들은 가끔 엇나가면서까지 부모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나도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자식들은 어떨까. 나와 아내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을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그런 선택을 할까. 내 삶의 무엇도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않으며, 대신 아파주지 않는데...... 무슨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비정하게도 자신에게만 남는데...... 가족끼리 그러는 건 상상만으로도 버겁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다. 또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을 판단하는 건 모두 섣부른 것일 수도 있지만. 게다가 다른 세상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주제넘은 행동은 딱 질색이지만 한 마디는 하고 싶다. 고생한만큼 과오는 인정하고 그녀가 잘 버텨서 완치되었으면 좋겠다. 딸과 함께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활짝 웃으며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속 꽃밭에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