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들이 주는 위로
고등학생 때였고 수학 시간이었다. 칠판에다 무언갈 쓰려다 말고 다시 우리 쪽으로 뒤돌아본 선생님은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셨다. 그러더니 본인에게도 가장 힘든 요일이 월요일이라고 운을 떼셨다. 아침부터 지쳐 보이는 학생들이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선생님이신지라 본인은 어떻게 월요병을 극복하는지 그 방법까지 일러 주셨다. 방법인즉 좋아하는 월, 화 드라마를 만들라는 거였다. 그러다 보면 주말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의 긍정에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크고 서야 알게 되었다. 직장인들에게는 월요병은 고사하고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전날의 숙취는 차치하더라도, 숨 막힐 듯한 만원 지옥철은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이 난센스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 좁고 한정된 공간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지 신기함을 넘어 기이하기까지 하다. 차량을 이용한다고 다를까. 제 신호에 가지 못하고 안전선을 한참 넘은 차량부터 경고 사격하듯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경적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요, 아비규환이다.
몇 해 전 이직하면서 조용한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곳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또 산자락이라 가는 동안 조용하고 차도 많지 않다. 그러다 근무지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길이 구불거리고 가팔라진다. 오르막길이 몇 번 나오는데, 마지막 오르막길은 좀 특별하다. 먼저 이 오르막길에 진입하면 지평선에 소실점을 찍어 놓은 것 같이 굉장히 타이트하게 느껴진다. 좌우로 뻥 뚫린 도로를 지나다 위쪽에 이르면 좌우 언덕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서 그러는 모양이다. 게다가 오르막길이라 뒤쪽 도로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길 끝에 조금씩 가까워지면 그 사이로 산이 모습을 드러내며 시야가 꽉 찬다. 그러다 오르막의 끝, 정점에 올랐을 때 시야가 트이면서 하늘이 보인다. 마치 하늘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도로 쪽으로 뻗어져 나온 나뭇가지들은 그 멋을 더한다. 나는 이 길을 하늘길이라고 부른다. 푸릇푸릇하고 맑은 하늘, 땅으로 쏟아지고 있는 듯한 구름, 좌우에서 초록빛 생기를 더하는 나무들까지. 이 삼박자에도 가슴이 뛰어 숨이 가쁠 지경인데 절경은 따로 있다. 이 길은 해가 뜨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운 좋게 동트는 시간에 지나가게 되면 길 위로 해님이 등장한다. 눈부시게 좋은 느낌이다.
이런 멋에 취하는 것도 잠시, 조금 있으면 벚꽃길이 나온다. 회사로 들어가는 길은 벚꽃 나무가 많다. 덕분에 다른 곳을 찾지 않아도 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첫째 아이 태몽이 벚꽃이라 그런지 벚꽃길이 기다려진다. 이제 다음 달이면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다 아는 그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리고 며칠 전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삼거리, 좌측으로는 저수지, 우측으로 논과 축사가 있는 길이었다. 출근할 때나 외근 나갈 때 몇 번씩이나 지나쳤던 길이고 당연히 익숙한 길이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낯설기까지 했다. 더 보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는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갈게요. 운동 삼아.”
내려다본 그 길은 다니기 수월한 정도만 포장되어 있었다. 11자로 보이는 그 길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논과 논을 양분하고 있었다. 안쪽 축사로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그 외에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직선으로 주욱 나 있는 그 길은 완벽한 1자가 아니었다. 지난번 폭우 때문인지 이가 나간 것처럼 파손된 곳이 일부 있었다. 중간쯤에는 곡선에 가까운 휘어진 길이 있었다. 좀 더 뒤로는 오르막길이 있었고, 그래서 내리막길도 있었다. 그러나 운전자는 분명히 이 길이 직선인 줄로만 알았을 테다.
그 길이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을까.
최근 둘째 아이를 낳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디 아이를 공짜로 키울 수 있으랴. 아이들이 주는 행복과는 별개로 심한 피로를 안게 되었다. 둘째는 세상에 적응하려는지 처음 한 주 동안 한 시간 간격으로 울고 보챘다. 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통에 안아서 재우는 게 일상이 됐다. 첫째 아이는 이제 막 분리 수면을 시작해서인지 새벽에는 꼭 한 번 깨서 한 시간을 더 놀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또 둘째를 질투하느라 떼도 많이 쓰고 안아달라고 졸랐다. 장난까지 심해져서 어제저녁 한 번 큰 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이었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여섯 시 전후로는 집을 나서야 한다. 출근 준비를 다 마쳤는데, 첫째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깨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30분을 더 놀아주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아내에게 인사를 전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아내는 수유 중이었다. 품에 안긴 아이는 갈증과 배고픔을 해소하느라 입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아내는 고개가 기역 자로 꺾인 채 졸고 있었다. 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아내는 잘 다녀오라며 엷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변명할 때의 표정을 지어 버렸다. 아내의 등을 쓸어내리는 것으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했고, '고생하겠네'라는 인사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전했다. 아내와 아이를 집에 두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의 현관은 하루 중 가장 차다. 출근길의 잿빛 하늘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도로마다 제 기능을 상실한 채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보면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에 빠졌다.
직장에서는 또 어떠한가. 자기 일만 해낸다고 회사 생활이 끝나나. 세상에 나 혼자만 육아하는 게 아니라서 동료들에게 피곤한 모습이나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건 유난이고 불편을 초래한다. 어쩌면 갈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들키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건만, 참 어렵다. 객쩍은 농담에 웃음은 실종된 지 오래다. 옆자리의 동료는 피곤해 보인다며 최선을 다해 나를 배려한다. 사적인 일로 동료의 배려를 강요하는 것 같아 괴롭다. 그리고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기준이라면 난 평생 아마추어로 살아갈 것 같다. 결국 퇴근길에 스스로 묻는다. 나는 몇 점 짜리 직장인인지. 과락은 면하고 있는지.
이 시기에 맞닥뜨린 그 길은 이렇게 내게 말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완전하고 완벽한 부모는 없어. 그건 직장을 다니든 아니든 관계없고. 나를 봐. 휘어진 부분도 있고, 중간중간은 유실되거나 파손된 부분도 있지. 그래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완벽하게 1자 도로라고 생각해. 다 똑같아. 사람들은 곧게 잘 지나갔고, 앞으로도 잘 지나갈 거야. 게다가 나중에 뒤돌아보고는 구불구불한 곳이나, 경사진 곳은 물론이고 유실된 곳조차 기억하지 못하지. 그렇게 탈 없이 본인이 가는 길을 보면서 잘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잘하고 있어 지금도.”
위로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출근길에 위로받았다는 말을 한번 해보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덜 힘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