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회사생활 하며 내가 겪어본 국가별, 인종별 반대의 메커니즘
몇 달 전, 아세안팀의 카운터파트로 부터 제대로 돌려 까기 당했다.
이유에서인 즉, 내가 자기의 영역을 넘어서서 업무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이유였는데 나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함께 조금 더 파이를 키워보자고 조언하고 계획을 제안해보겠다고 한 것이 그녀에게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으로 느껴졌나 보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나도 억울했던 것이 사실 그것은 윗선에서의 결정이었고 나도 함께 잘 어우러져서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던 마음에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더 그런 것이... 막상 나와의 대화에서는 좋은 아이디어인 양 함께 고려해 보자라고 결론을 지었는데 막상 윗선에서 내려온 피드백은 생판 다른 것이었다.
'싫으면 그냥 나한테 직접 말하지 왜 뒤로 돌려서 까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과 스트레스가 함께 확 밀려왔다. 전형적인 돌려 까기인데 이건 먼저 상부 조직과 주변 조직에 뿌리는 사람이 승자인 듯. 뭐 드라마틱하게 내가 다시 정정을 했다거나 타협을 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냥 공식화되지 않은 탐욕자라는 원치 않은 타이틀이 나에게 남았을 뿐이다. 돌려 까기가 대응하기 제일 힘들다.
한국을 떠나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며 살아온 지 언 17년이 넘어간다. 직장에서 다양한 태클들이 들어오지만, 돌려 까기 만큼 어려운 방어전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돌려 까기를 한 가해자(?)나 피해자(?) 그리고 그 주변의 Stakeholder들 모두 서로 어색한 눈치 보게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며 프로젝트/프로그램팀에 toxic culture (유해한 문화라고 해야 하나...) 같은 씨앗이 뿌려진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이런 씨앗이 싹을 못 틔우겠지만,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프로젝트라면 하나가 죽거나 포기하거나 머리를 숙일 때까지 계속된다. 까기의 문화를 인종, 문화로 나누기 조금 애매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 봤다.
나름 경험한 몇 가지 "까기"의 형태와 나의 대응방법을 공유해 본다.
1. 돌려 까기 - 위에 말한 "돌려 까기"의 경우에는 대부분 결국 내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수십 번 말해서 분위기를 바꿀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 씌워진 누명(?)은 완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될 것 같아 빠르게 포기하고 그 업무를 내어주었다. 그냥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아직 침대 속 이불킥을 가끔 한다. 언젠가 나에게도 카운터를 날릴 수 있는 그날이 오겠지 라며 마음속의 태세를 전환해 본다. 몇 번 돌려 까기를 성공적(?)으로 막은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대부분 "기록"을 남긴 경우였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평판과 상대방의 성향에 때라 약간의 편집증 성향을 발동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기록을 남겨두는 것만큼 회사생활에서 위기극복을 도와주는 무기가 있을까?
(미국, 호주, 영국, 아시아 문화권에서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 봤다. 대중을 이용하여 자신의 편을 만들고 소문을 잘 활용하는 것 같다.)
2. 면전에서 까기 - 가장 쉽게 대응이 가능한 '까기'의 형태인 것 같다. 첫 번째 대응은, 면전에서 까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얹지 않고 분위기를 가장 어색한 상황으로 만들어가며 그냥 고개를 5~10도 정도 갸우뚱한 상태로 나를 '깐' 상대를 그냥 응시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상대방이 말을 더 얹기 시작하는데 그때 그냥 놔두면 혼자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단계 진보한 경우는, 어떤 포인트에서 나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I don't get you. can you elaborate the point you just mentioned? 잘 못 알아듣겠다, 조금 더 설명해 볼래?"라고 반문하면 자기가 스스로 함정을 파기 시작하고 포인트가 잡히면 단호하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불안한 쪽이 구차하게 설명을 구구절절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이미 내가 이긴 것. (더치를 포함한 서유럽/북유럽의 조직 사회문화인 경우가 많았다)
3. 팩트로 까기 - "하지만, 조사 자료를 보면 국민의 64%가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습니다."라는 식으로 팩트기반으로 까는 사람들에게는 나머지 36%에 대한 정당성과 조사 절차와 구조상의 편향/편파를 걸고넘어지면 된다. 64%가 많아 보이지만 그 순간 조사절차와 구조 및 표본들이 전체 100%를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파성통제는 기본적인 리서치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이것을 증명하기도 사실 쉽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팩트 기반의 까기라도 언제든 판의 흐름을 흐트러 놓을 수 있고 청중이나 동석에 있는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물귀신처럼 너도 명확하지 않잖아?라고 했다고나 할까... (이건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사람의 페르소나에 따라 통계나 수치를 활용하여 상대방을 누르려는 사람들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 방식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위의 3가지가 대부분 내가 겪은 "까기"의 형태이다. 당연히 다국적회사에서 일하는 터라 적어도 내가 할 말을 할 수 있는 문화일 때 위의 대응이 어느 정도 가능 했던 것 같다.
가끔 회사에서 보이는 "까기"가 불필요할 정도로 주변 동료들을 잘 어울러가며 어떤 때는 자신을 낮추고 어떤 때는 결단력을 동반한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이는 동료들이 부럽다. 그런 동료들은 조금 더 가까워지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가끔 밤고구마 가득 물고 있는 보살 같은 동료들이 답답할 때도 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