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쯤 & 언제쯤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봄이 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나의 하류를 지나.
-루시드 폴
얼마 전 고향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를 화장하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훗날 한국에 있는 그런 것들에 덜 신경 쓰게 하려 결정했다 한다. 노부모가 내린 결정이 혹 해외 사는 나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말 안 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상의도 없이 한 결정에 서운한 마음을 가질까 싶어 말하는 거란다.
그 결정의 시작은 당신들이 세상을 떠난 후 당신들의 부모인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무덤이 잡초와 나무뿌리로 뒤덮이고 아무도 오지 않는 무연고 묘지가 될까 걱정이 되셨겠지. 그러다 보니 나로서는 미안하고 씁쓸한 결정을 내리셨으리라.
며칠 전 친한 선배와 대화 중에 중년의 삶에 접어들며 쌓여가는 어려운 인생의 결정들과 사고의 과정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내리막길 같은 느낌이 들어 살아가는 결정을 내리는 무게가 더 크게 느껴져요. 뭔가 결정하기에 더 망설여지고 이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거란 걸 너무 많이 경험해 와서 가끔 겁도 나도 망설여지네요. 뭔가 슬픈 일에 대한 결정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좀 먹먹한 느낌이 들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를 지우고 화장하여 어딘가에 흩뿌리는 결정을 한 내 부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처럼 뭔가 무거운 돌덩이를 마음에 들여두며 서로 아무 말이 없이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을까.
그러면서 해외에 생존을 위한답시고 나와 사는 아들 녀석에게 그런 기분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랐을까.
그들도 겁이 났을까.
이게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세상에 이미 없는 당신의 엄마와 아빠에게 속으로 물어봤을까.
말이 별로 없으신 내 아버지는 어딘가 가서 약주를 한잔 하셨을까.
이럴 때는 한국에서 살아야 할 내가 어쩌다 여기 와서… 흔히 하는 말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만리타향으로 와서 사나. 싶은 마음에 잠을 설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노트북으로 몇 글자 끄적여보는 것으로 마음만 눈과 손가락으로 흘려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