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지성이 손흥민보다 더 뛰어난 축구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두 번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이전 글 참조)
현역 축구선수가 꿈꾸는 커리어 최고의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여건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선수들은 우승의 순간을 꿈꾼다. 시즌 중 존재하는 모든 트로피를 바라보며 매경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감독들은 우승을 위해 최고의 팀을 구성하고자 노력하며, 선수들은 이러한 감독의 눈에 들고 많은 경기에서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한다. 물론, 강등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인 팀도 있다. 중위권 안착이 목표인 팀도 있다. 하지만, 그런 팀의 선수들도 막연하게나마 우승을 꿈꾼다. 다만,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뿐이다.
현대축구에는 개인 기록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이 존재한다. 수비수라면 경기당 Clearance, 수비형 미드필더라면 Ball Recovery, Interception, 공격형 미드필드라면 Assist, Pass Success Rate, 최전방 공격수에게는 Assist, Score 등등. 이러한 수치들은 선수들의 몸 값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시즌이 끝나면 FIFA, UEFA 그리고 각 대륙별 협회들 모두 올해의 선수를 선정하고 개인 시상을 진행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팀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최상급 선수에게, 수려한 개인 기록은 더 큰 아쉬움을 남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박지성은 분명 우승운이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지성은 소속했던 모든 팀에서 주축으로 역할하였기에 단순히 운으로 그의 트로피 숫자를 폄훼할 수는 없다. 앞선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선수들이 갈망하는 우승 트로피의 숫자를 선수생활의 KPI (Key Performance Index)로 설정한다면, 이 부분에서 박지성은 현재까지 손흥민을 압도한다. 박지성의 주요 우승 경력은 아래와 같다.
교토퍼플상가
- J2리그 우승, J리그 천황배 컵 우승
PSV 아인트호벤
- 리그 우승 2회, 컵 우승 1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리그 우승 4회, 컵 우승 3회
-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 클럽월드컵 우승 1회
소속팀에서의 업적이 이와 같은 선수는, 차범근 선수를 제외한다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박지성은 이전 편의 글에서 인용한 팀 동료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큰 공헌을 하였다.
더불어, 박지성의 국가대표팀 커리어는 대한민국 현대축구사 그 자체이다. 박지성은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이며, 2010 월드컵 16강, 아시안게임 동메달, 아시안컵 3위, 이 외에도 많은 경기들을 통해 회자된다. 또한 박지성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레전드 플레이어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카가와, 오카자키와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도 박지성을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여러 인터뷰에서 꼽았다. 그들의 축구인생에 큰 영감을 준 선수로도 주저 없이 박지성을 언급할 만큼 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중요한 선수이다.
반면, 불행히도 손흥민은 아직까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제외하고는 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손흥민이 더 못한다고?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사실 답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손흥민의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하고 다닐 만큼 그의 광팬이다. 밤을 새우며 그의 경기를 모두 챙겨본다. 나는 손흥민이 현재를 대표하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EPL 사무국은 아래와 같은 설문을 진행하였다. "누가 역대 최고의 아시아 출신 EPL 선수인가?"
어쩌면 현역으로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손흥민이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라는 시점을 고려하더라도, 대중적인 인기에 있어서, 손흥민은 어쩌면 이미 박지성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기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이유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로, 포지션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손흥민의 플레이는 박지성과는 도드라지게 차별된다. 최정상급 피지컬을 갖춘 손흥민은 강력한 대퇴부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스프린트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골을 생산한다. 2020년 FIFA 선정 최고의 골인 푸스카스상을 수상한 2019/20 시즌 번리전 득점은 우울할 때마다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같은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그의 활약은 전성기의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는 것처럼 묵직했으며, 여운이 남았다.
둘째로, 손흥민은 다양한 콘텐츠를 팬들이 활발하게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팬덤을 관통하며,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의 패션감각, 외모, 스타일 등 모든 요소들이 손흥민을 구성하는 가치가 되었으며 브랜드들은 그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광고들을 생산하고 유통하였다. tvn은 손흥민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고, 그의 인간적이고 성실한 모습은 전국적/전연령적 팬덤을 형성하였다.
손흥민은 현재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다양한 성별/연령을 공략할 수 있는 안전한 플랫폼이다. 그러한 이유로, 큰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손흥민은 국민들과 브랜드들에게 사랑받는 안정적인 선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 VS 손흥민. 누가 더 뛰어난 축구선수인가? 는 다른 문제이다. 박지성이 없었다면 손흥민이 있었을까?라는 식상한 질문은 하지 않겠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박지성은 개인능력과 성과 측면에서 손흥민을 압도한다. 물론 손흥민에게는 아직 더 많은 시즌이 남아있다. 하지만 2021년 4월 현재 시점에서, 나는 박지성이 더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