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지성이 손흥민보다 더 뛰어난 축구선수라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많은 사람들은 손흥민이 박지성보다 훨씬 뛰어난 개인 기량을 지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난 동의하기 힘들다. 축구경기에서 필요한 개인 기량은 너무도 다양하다. 개인기=드리블로 자주 인식되지만, 드리블은 수많은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극단적인 패스 플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팀의 경우 드리블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조직력으로만 경기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 이런 팀에서 중요한 개인 기량은 드리블이 아닌 패스, 위치 선정, 공간인식, 체력, 슈팅 등과 같은 요소이다. 이처럼, 축구는 팀의 색깔 그리고 상대팀을 대하는 전술에 따라 구성원인 개인에게 필요한 능력이 다르게 요구되는 대표적인 팀 스포츠이다.
물론, 역사상 인간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극소수의 선수들은 마음껏 휘저으며 경기를 흔들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는 경우는 존재한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극소수의 선수들이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팀의 성공을 위하여 각기 다른 임무를 부여받으며, 목표가 설정되면 이를 수행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박지성이 커리어 내내 가장 큰 인정을 받았던 부분이 바로 전술 수행능력이다.
이러한 박지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식어가 바로 "Unsung Hero" , "Big-Game Player"이다. 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큰 경기에서는 그 역할이 더 부각되는, 박지성은 유사한 선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유형의 선수였다. 이러한 이유로 히딩크 감독은 주저 없이 2002 월드컵 이후 박지성을 자신이 이끄는 아인트호벤에 영입하였으며, 아래와 같이 회상하였다.
“People were surprised I took him to Europe. He does dirty work for the bigger stars. I appreciate those people, always. His skills? He is tireless, can go for 90 minutes, he’s a smart player and is very determined.”
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위하여 고된 임무를 마다하지 않는 선수. 지치지 않고 90분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체력, 지능, 책임감. 이 모든 것들이 아우러져 박지성의 능력치를 구성한다. 이를 백분 활용한 히딩크의 아인트호벤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여 AC Milan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며, 4강전 에서 박지성은 득점까지 기록하며 Manchester United (이하 맨유)의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게 된다. 이후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맨유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에 입단하게 된다. 맨유에서의 박지성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는, 그의 동료이자 영국대표팀의 레전드 수비수인 리오 퍼디낸드의 아래 인터뷰를 짐작할 수 있다.
“He’s a real players’ player. Up there with best in world for movement, and so intelligent and direct with runs off the ball. His work-rate is unreal, he adds a dimension no other player brings to the team. He’s underrated, a real top player.”
진정한 "선수들의 선수". 인종적인 이유 등으로 팀원들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박지성은 경기 중 그 어떤 선수도 할 수 없는 공간 창출 능력을 지닌, 비현실적인 능력의 선수였다. 박지성 커리어 중 최고의 경기로 꼽히는 2010년 맨유 vs 밀란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은 그의 진가를 전 세계에 쇼케이스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팀 동료였던 웨인 루니는 퍼거슨과 박지성 간 경기 전 대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Your job today is not about touching the ball, it’s not about making passes, your job is Pirlo. That’s all. Pirlo,”
"오늘 너의 임무는 공을 잡거나 좋은 패스를 만드는 게 아니야. 너의 임무는 피를로 야."당시 퍼거슨 감독은 최고의 스쿼드를 구성하고 있는 밀란을 잡기 위해서 경기를 지휘하는 중앙 미드필더 피를로를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임무는 박지성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명확했다. 이 경기에서 피를로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후 피를로는 그의 자서전에서 퍼거슨 감독의 전술을 회상하며 그 핵심에 있었던 박지성에 대해 언급한다.
"Alex unleashed Park Ji-sung to shadow me. The midfielder must have been the first nuclear-powered South Korean in history, in the sense that he rushed about the pitch at the speed of an electron.”
핵연료를 장착한 한국의 미드필더, 전자(電子)의 속도로 경기장을 누비던 박지성을 풀어 나를 그림자 수비하도록 하였다. 이후 퍼디낸드 등 여러 동료들도 피를로가 박지성의 악몽을 꿀 정도로 지독하고 완벽한 수비였다고 그날의 경기를 회상한다.
박지성은 커리어 내내 지치지 않았다. 커리어의 초창기였던 2002년 월드컵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박지성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경기장에서 최고의 능력치를 보여주었다. 그의 무릎이 그렇게 빨리 닳아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희소성 있는 개인능력으로 유럽 최고 EPL, 그리고 최고의 클럽 맨유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한 박지성은 위와 같은 이유로 전무후무한 선수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