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ox Scandal
얼마 전,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윤성환 투수가 구속되었다. 죄명은 승부조작.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구속수사가 결정된 만큼, 그의 가담 여부에는 이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심까지의 재판을 통해 그의 결백이 증명되기를 누구보다 소망한다.
이번 사건을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프로스포츠에는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난다.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심지어 이스포츠 (eSports)에서도 조작 사건은 벌어진다. 눈에 보이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천마리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하는 것처럼, 한국 스포츠의 승부조작은 뉴스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현대 프로스포츠의 상업적 토대가 형성되고, 발전을 주도하였던 미국에서도 온 나라를 뒤 흔들었던 승부조작 사건이 있었다.
1차 대전 직후. 미국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크고 작은 재조정과 부양책들이 있었지만, 세계경제의 침체 흐름 속에서 미국의 경제도 대공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득권층들은 경제재건의 명목 하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나가고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은 불안정한 금융시장 속에서 급속히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한 삶 속에서 스포츠는 커다란 활력소였으며,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미국인들의 모든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America's National Pastime (미국인들의 국민 여가)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스포츠는 야구뿐이며 MLB (Major League Baseball)는 굳건히 메이저 프로리그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1919년 시즌. 우리에게는 베이브 루스의 시대로 잘 알려진 그 해 가을. 모두가 기다려온 월드시리즈는 야구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대공황기의 미국인들을 능멸하는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1917년 월드시리즈를 거머쥐고, 1919년 월드시리즈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시카고 화이트삭스 (Chicago White Sox) 소속 주전 선수 8인은, 한 수 아래 전력으로 분류되던 신시내티 레즈 (Cincinnati Reds) 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시리즈 직전 화이트삭스의 주전 선수 8명은 승부를 조작하자는 불법 도박사들의 제안에 동의하였으며, 대가로 거액의 보너스를 약속받았다.
이 희대의 승부조작의 시작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던 팀 선수들과 구단주인 찰리 코미스키 (Charlie Comiskey) 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1917 시즌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뉴욕 양키즈 (New York Yankees)와 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 선수들보다 적게 봉급을 받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중에서도 1919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며 정규시즌 29승을 기록한 에디 시코트 (Eddie Cicotte)는 1승만 더하면 1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단주 찰리는 보너스를 지급하기가 너무 아깝다.
'며칠만 더 버티면 정규시즌이 마무리되는데, 몇 경기만 의도적으로 결장시키면 1만 달러를 아낄 수 있는데.' 결국 찰리는 의도적으로 에디의 30승을 막아내고, 찰리의 의도를 알아챈 에디는 실망한다.
이렇게, 일련의 갈등들이 쌓여가고,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던 선수들은 1루수 간들리 (Gandli)를 중심으로 승부조작에 동조하게 된다. 그렇게 거의 모든 선발 선수들이 패배를 합의한 채 월드시리즈에 돌입한다.
최고의 선수들답게 경기는 정교하게 조작되었지만, 8차전에 달했던 시리즈 내내 전문가들과 기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플레이에서 의문이 재기되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넘치는 의혹과 증거들은 법적 판결을 피해 갈 수 없는 수준에 달하게 된다. 마침내 1920 시즌 대배심 (Grand Jury)에 의해 기소가 의결되었으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1921 시즌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재판에는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재판 결과, 가담자 8인 전원은 야구로부터 영구 제명된다. 아이들의 우상이었던 조 잭슨 (Joe Jackson)을 비롯한 8인의 시카고 선수들은 야구계에서 영원히 불명예 퇴출된다. 조 잭슨의 가담 여부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끝내 조 잭슨도 야구에 복귀할 수는 없었으며, Black Sox Scandal의 가담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미국에서의 Black Sox Scandal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의 조작 사건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불공정이 넘치던 전후 개발 붐 속에서, 대중들이 공정의 청정구역으로 남아 있기를 갈망했던 스포츠계의 몰락이며, 실망한 대중들은 분노보다 높은 차원의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현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계에서 함의를 분석하고 있으며, 깊이와 빈도에 있어서 충분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다.
엄청난 수준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행히도 MLB에서 승부조작으로 큰 논란이 일어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Black Sox Scandal 은 야구팬들에게 최악의 사건이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승부의 의외성은 스포츠의 본질이다. 선수들은 스포츠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선수는 스포츠의 대표 상품인 경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종사자이다. 프로스포츠는 여러 흥행요소들을 가미하여, 경기들/선수들을 포장하여 소비자에게 상품으로 제공하는 산업이다. 의외성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선수들의 행동은 스포츠의 본질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며, 프로스포츠의 핵심상품인 경기를 불량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다.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는 스타가 되지만, 경기를 조작하는 선수는 스스로를 고장 난 부품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어떠한 이유인지 우리 사회는 프로스포츠의 승부조작에 관대하다. 선수들은 마찬가지로 영구제명이 되지만, 그 고장 난 부품들만 교체하고 아무 일 없었던 듯 경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반복된다. 그들만의 요식행위 수준에서 제도적 개선이 반복되어도, 승부조작의 뿌리는 아직도 굳건하다.
승부조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론화하는 대화의 장이 지금처럼 스포츠계에서만 머무른다면, 대한민국 프로스포츠에서의 승부조작은 영원히 뿌리 뽑히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