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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Oct 28. 2021

영포티가 20대에게

억울함에 시작한 편지

영포티 (Young Forty).


여러 다양한 정의들이 난무 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칭찬일 줄 알았어. 두 단어 중 강세가 Forty 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즈음, 나름대로 노력하며 젊게 입고, 젊게 말하려 노력하던 나의 모습이 무안하게 느껴졌지.


젊은 척해봤자, 결국 40대.


사회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소비층인지,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


어쩜 저렇게 잔인한 말을 만들었어? 잠깐 너의 20대들이 밉게 느껴졌어. "니들은 40대가 안될 것 같아? 우리는 20대 때 니들보다 잘 놀았어. 나름 잘 나갔어."


분한 기분이 들 때마다 중얼거려 봤지만,. 금세 다시 허무해지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 봤자 난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는 공식적인 증명서를 발급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 이제 더 이상 우리도 충분히 젊다고 우기지는 않을게. 하지만, 너희가 잘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얘기는 해줘야 할 것 같아. 우리도 어마어마한 시절이 있었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지금부터 잠시 영포티를 대변하여, 너희 20대가 너희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가벼운 주제로 세가지만 얘기해볼게.


1. 엔비아이엔비 그리고 홍대 클럽문화의 시작

20대 너희들이 지금 열광하는 홍대 거리. 그 클럽문화. 그 시작은 우리 때였다고 보면 된단다. 1999 대한민국/2000 대한민국이라는 힙합 앨범의 성공과 함께, 랩/비보잉 문화도 본격적으로 언더씬에서 퍼지기 시작했지. 1999년 엔비아이엔비라는 클럽이 홍대에 오픈했어. 미국 느낌 물씬 나는. 지금은 논란이 있는 인물이지만, YG 양현석이 오픈한 클럽이야. 당시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인 우리에게는 이이돌 중 아이돌이었지. 그가 오픈한 클럽은 무조건 가야만 하는 그런 장소였어. 엔비를 중심으로 홍대 골목골목 클럽들은 백신 없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고, 그 일대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거야. 우리가 그 시절, 밤을 새워 미친 듯이 홍대를 누비지 않았다면, 지금 너희가 열광하는 지금의 홍대는 물론 그 일대의 연남, 합정도 없었을지도 몰라.


2.  PC방 문화, e-Sports 왕국의 토대

우리의 대학시절 공강 시간은 여전히 당구장파와 PC방파로 나뉘었어. 대학가도 90년대만 해도 당구장의 숫자가 압도적이었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며 급격히 PC방의 수가 많아졌어.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었지. 이 게임은 우리의 일과가 되었어. 상대적으로 고사양을 요하는 게임이기에, 집에서 하기는 좀 힘들었지. 그래서 모두가 PC방을 찾았고, 그야말로 광풍이었어. 게임만 중계하는 채널이 생겨났고, 프로게이머들도 생겨났지. 게이머들이 광고도 찍고, 방송에도 출연했어. 음지에 있었던, 온라인 게임이 완벽한 양지로 올라오게 되었지. 당연한 세계적인 현상 아니었냐고?  아니 그렇지 않아. 물론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게임들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매출은 나머지 국가들 매출의 합을 넘어설 만큼 압도적이었어. 세계 상위 랭커들도 한국인들이 대다수였고, 해외의 게이머들이 한국리그로 진출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지. 지금, 너희들이 열광하는 eEports, LoL. 자신 있게 말하지만, 우리가 낮밤을 새워가며 닦아놓은 PC방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  


3. 취업난. 그리고 입학연기. 벤처 문화의 시작

MT, 축제, PC방 등등. 너무 열심히 놀아서인지, 학점을 잘 관리하지 못했어. 졸업 전에 열심히 재수강하며 메꿔봤지만 한계가 있었지. 그래서 취업이 잘 안 되는 줄 알았어. 많은 친구들이 당황하며 졸업을 연기했고, 휴학하며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어. 회계사, 변호사, 공무원, 경찰, 세무사 등 등. 아마도 우리가 사회에 나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4년을 마치고 바로 졸업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 된 것 같아.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대학 진학률과 채용시장의 괴리가 근본적인 취업난의 원인이었겠지만, 우리들은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책을 더 많이 했어. 내가 부족하구나,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선배 세대보다는 IT에 훨씬 밝은 세대이기에,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아보려 노력했어. 크고 작은 벤처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 대기업에서 나온 선배들과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조그만 서비스를 개발해서 운용해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동아리도 만들고. 그 당시 모든 드라마에서, 벤처기업 사장들은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멋진 캐릭터로 그려졌어. 우리는 IMF 이후 취업난을 처음으로 맞닥뜨린 세대이지만,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게 맞서 보려 많은 노력을 했었어.


사실 앞의 1, 2번을 쓰면서 의기양양했어. 너희들 그러니까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3번을 쓰다 보니까,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네. 무엇보다 지금 너희들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대기업 공채가 사라진다는 얘기도 얼마 전에 들었어. 점점 부동산 가격은 범접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고, 그나마 가능했던 대출도 조여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고. 이미 학력은 소득 수준을 반영하는, 하나의 권력이 된 지 오래되었고. 우리 때보다 훨씬 사회에 나오는 시점에서 보이는 장벽과 한계점이 더 명확하게 보이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 같네.  


어느 정도의 방탕함은 대학시절의 낭만으로 포장되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보다는, 너희들이 열심히 살아왔고, 치열하게 준비했지만, 사회는 이미 기성세대들을 중심으로 공고한 왕국이 형성되어 있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야. 우리는 운 좋게 그 성문의 마지막 통과자였어. 문을 닫고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동시에 이 왕국은 정원이 초과되었고 문은 닫히고 말았어. 그 문이 닫히지 않도록 온 힘을 쓰며 잡고 있었어야 너희들이 조금이나마 편했을 텐데. 미안한 마음까지 드네.


누군가는 너희들이 배고픔을 몰라 의지가 약하다고들 많이 얘기해. 하지만, 우리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미 대한민국은 굶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니, 당연히 물리적인 생존은 더 이상 성공을 의미하지 않지. 배고픈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 너희들에게 성공의 기준은 조금 다른 것 같아. 어떻게 보면 더 폼나고, 남들과 다른 멋진 삶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야.


어찌 보면 기성세대들과 다른 성공의 기준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영포티들이, 너희 20대들의 고충을 제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실제로 채용하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너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는지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어찌 보면, 함께 일하는 부장, 팀장 뻘인 우리들에게 너희도 친근감을 더 느끼기에 영포티라는, 어찌 보면 귀여운 별명을 붙여 준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마음에서 글을 시작했는데,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네. 복잡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게 사실이야.


아무튼, 우리 같이 잘 지내보자.


- 영포티 팀장이 20대들에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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