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와 신중, 그 사이 어딘가
"지금 혹시 사무실에 계신가요?" 1
파트너사 임원에게 카톡이 왔다. 나는 쉽게 창을 열고 숫자 1을 지우지 못한다. 내가 사무실에 있으면, 방문하려고 하나? 지난번에 요청한 자료를 다 바꾸려고 할 참인가? 퀵을 보내려나?
껄끄러운 임원이기에 선뜻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긴 시간 답을 안 할 수도 없다. 그가 평소 직원들의 읽씹을 공공연히 불평하던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능한 복잡한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애매하게 답을 한다. 나의 답장에는 대략 2분이 소요되었다.
"아직 외부 회의가 있어서 못 들어갔습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있을 듯합니다.
나의 메시지에 숫자 1이 바로 사라진다. 역시 그는 답을 기다리며 카톡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의 대화에는 약간의 지연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이따 2시쯤 잠시 들를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그러시죠. 회의실 잡아 놓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우리는 통화보다 간편히 묻고 답할 수 있는 Instant Text Message 우위의 세상을 살고 있다. 이메일이 다소 격식있는 연설문의 느낌이라면, 카톡/문자는 일상적인 대화이다. 일상은 물론이고, 업무상으로도 카톡과 문자와 같은 Text message 가 주요 소통 플랫폼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중, 업무상 톡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하루에도 수 십 번 반복하게 된다.
1. 톡이 울린다.
2. 잠금 상태에서 메시지를 확인한다. 상대방에게 읽음을 들키지 않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3. 고민한다. 두 갈래의 선택지가 있다.
- 바로 카톡창을 열어 읽었음을 노출할 것인가?
- 조금 더 메시지 내용을 생각해보고 준비되면 답을 할 것인가?
4. 창을 열어 나의 읽음이 상대방에게 확인되면 최대한 지체 없이 답을 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의 읽음을 상대방이 확인했는가?'이다. 만약 확인했다면, 최대한 지체 없이 답하는 것이 매너라는 불문율이 반영되어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용인될 수 있는 답변의 시간은 다소 다를 수 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대방이 나의 톡을 '읽씹'했다고 규정한다.
과연 '읽씹' 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읽씹에도 다양한 의도와 상황이 존재한다.
1. 무시. 당신의 톡은 나의 우선순위가 아님.
- 이 경우, 상대방은 실망과 동시에 상처를 받는다.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는 기분을 즐길 수는 없다.
2. 진짜 바쁨. 답장할 겨를도 없이 바빠서, 톡을 보낼 수도 없음.
-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아주 짧은 몇 개의 음절로 절박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오타를 섞어 보내면 더 급박하고 바빠 보인다.
'자ㅁ 간만', 'ㅇ ㅣ 닥가 하께' 와 같은 답을 바로 보내준다면 상대방도 이해하고 오래 기다려 줄 수 있다.
3. 신중. 또 신중.
- 실수를 근본적으로 피하기 위해 신중을 가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준비가 될 때까지 답변을 보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업무상 카톡에는 대부분 이런 상황들이 적용된다.
글을 쓰다 보니, 읽씹이라는 신조어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 단어에 부정적 인식에 매몰되어, 톡의 답장이 느린 경우, 읽었지만 답을 늦게 혹은 안 하는 경우를 '읽고 씹는' 행동으로 규정한다. 엄밀히 따지면, 철저한 무시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상대방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신중을 기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1994년 중학생 시절, 친구와 토요일 아침 8시에 혜화동 로터리 전화박스에서 만나 목욕탕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시간이 되어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 편하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었다. '오겠지, 시간을 잘못 전해줬나? 무슨 일이 있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기다렸고, 결국 그 친구는 2시간이 늦은 10시에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전날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나는 8시로 그 친구는 10시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 이유였다. 서로 한 번만 되묻고 확인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요즘은 이런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 글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니 정확하다. 이 모든 과정을 신중을 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자. 어른들은 요즘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쥐고 산다고 타박하지만, 인스턴트 식 소통은 역설적이게도 실수의 확률을 낮추어주고 정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반면 소통의 과정도 복잡해졌다. 그중 확인하고 답하는 시간을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긴장감이 조성된다. 긴장감을 넘어서 정도를 지나치면 우리는 '읽씹'이라는 단어로 상대방의 소통 방식을 규정하고 그에 맞게 대응한다.
만약 길어지는 그 시간의 이유를 신중함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은 나쁘다. 하지만, 상대방이 무시한다고 오해를 하는 것도 그만큼 나쁘다. 우리는 모두의 모든 상황들을 알지 못한다. 함부로 생각하고 단정짓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