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me] 1화 - 낯선 사람과 책으로 대화하기

by 이고양


*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1화 - 낯선 사람과 책으로 대화하기







초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 위로 하얀 초승달이 또렷하게 보이던 어느 가을날. 그날의 하늘과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카페 '달'에서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모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만든 독서모임 For me에 처음으로 회원이 참석하던 날이었다. 모임을 만든 지 4주 차가 되어서야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 모임을 만들자마자 어째서인지 순식간에 사람들이 가입해서 정원을 거의 채울 정도였지만, 막상 오프라인 모임에는 참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창립멤버였던 여우님과 둘이서만 모임을 진행했던 게 벌써 3주. 그리고 4주 차가 시작될 때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다른 회원이 참여했다.



설레는 마음에 정해두었던 모임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카페에는, 이미 여우님이 도착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여우님 역시 다른 사람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독서모임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미 같이 많은 책을 읽었고 대화도 많이 나누어본 사람들이 무엇이 그리 긴장되었던 걸까?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걸 그리 어려워하지도 않는데 무엇이 염려되어 그렇게 일찍 미리 도착해서 할 말을 연습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경험과,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 이 두 가지를 따로따로 경험해 본 적은 많지만 '낯선 사람과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라는 경험은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해야 할까? 처음에는 무슨 말로 인사를 할까? 해야 할 말들을 미리 생각해 보고, 여우님을 앞에 두고 처음 보는 듯이 예행연습도 했었다. 아직 연습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간이 다 되었고 For me의 첫 회원들이 카페에 등장해버렸다. 당황한 기색을 얼른 감추고 태연한 척 회원들을 환영하며 모임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했던 말은 온데간데없고 내뱉어지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시 책을 읽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고.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던 말들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고민하고 준비했던 시간이 무색해져버렸다.



사실 그 고민들은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준비한 말들을 제대로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에는 낯설음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 소재는 각자 읽은 책 속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처음 모임을 만들 때 정했던 규칙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와서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4명의 사람이 모였으니 책도 4권이 되는 셈. 자기계발, 소설, 인문학, 철학. 분야도 다양한 책들 하나하나가 많은 대화거리를 품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고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맨 마지막 순서로 미뤄두었던 내 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전혀 아쉽지 않을 만큼 즐거운 대화였다.



이제는 모임을 운영한지도 어느덧 2년 차. 처음 오는 신규 회원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익숙해져간다. 물론 잘 아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주는 깊이는 단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고 그 거리감만큼 대화가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대화가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으며, 책을 읽고자 하는 참여자들의 마음을 믿기 때문이다.



책에는 마음을 두드리는 힘이 있다. 모든 책은 우리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있으며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건드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 책이 상대방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저 뒤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질문으로 꺼내어 함께 대답해 보는 것, 책을 읽으며 생겨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는 것. 이러한 대화는 책을 읽지 않고 나누어왔던 대화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대화를 만들어낸다. 서로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 초면에 나누는 가벼운 대화들을 가볍게 생략하고 순식간에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게 된다. 그것도 별다른 위화감 없이 말이다.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에는 거리감을 단숨에 좁히는 힘이 있다.



책에는 또 다른 힘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대화의 소재를 마음껏 넘나드는 힘이다. 초면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에는 어려운 소재들이 있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 종교관, 직업윤리, 책임과 의무, 정의, 사랑 등등..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 대뜸 꺼내기에는 어려운 소재들이 있다. 자칫 잘못 꺼냈다가는 어색해지거나 거리감만 생기게 되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책은 이러한 소재에 대해 멋진 핑곗거리가 되어준다. 읽은 책에서 나온 주제가 그러한 주제라는 명분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첫 독서모임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소재는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가.

- 무언가를 맹렬히 공부해 본 적이 있는가? 그 경험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접하기에 꺼려지는 소재가 있는가?

- 동성애,젠더문제,정치,종교. 이러한 소재들을 꺼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어떠한 태도로 대하면 좋을까?

- 명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명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는 어떠한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날 처음 본 사람들끼리 나누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소재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꽤 긴 시간을 막힘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모임의 독특함 덕분이다. 사회적 위치, 입장, 관계성, 그 어떤 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롯이 대화로써만 맺어지는 관계. 그렇기에 더욱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시간. 사회의 어떤 관계에서도 찾기 힘든 모습이다. 오로지 독서모임에서만 이러한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독서모임에 처음 나오는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걱정과 긴장감이 있었음을 듣게 된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긴장감, 말을 엄청 잘 해야만 한다는 걱정, 읽은 책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 깊이 있는 생각과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이러한 두려움이 참석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실제로 책 내용을 미리 검색해 보고 요점정리하듯이 정리해서 오신 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한 번만 참석해 보아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을 잘 해야 할 필요도 없고, 논리정연한 설명도 하지 않아도 된다. 질문은 그저 책을 읽으며 생겨난 가벼운 의문점이면 충분하다. 모든 질문은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며 정답 또한 없다. 그저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각자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뿐이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편안한 대화 속에서 어느덧 마음속 깊숙한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된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기에 더 깊어질 수도 있는 대화. 책과 함께하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대화. 독서모임이기에 가능한 이러한 대화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모임을 만들기를 잘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