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2화 - 책이 중요하지 않은 독서모임
독서모임 For me의 4번째 정기모임은 찬바람이 불던 11월이었다. 모임을 만든 지 2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정기모임이 4번째일 뿐이지 평일 중에 열리는 비정기모임(우리는 독서벙이라고 불렀다)도 4번 정도 열렸으니, 정말 1주일에 한번 꼴로는 꼬박꼬박 모임을 가졌었다. 그 사이 20명 정원으로 정해두었던 회원은 벌써 꽉 차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처음부터 많은 분들이 그토록 찾아와 주신 게 신기했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첫 모임과는 달리 그새 익숙해져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회원들을 기다리게 될 정도가 되었고, 이제는 여러 번 보아서 익숙해진 얼굴들도 있었다. 2개월 사이 독서모임은 어느새 나의 삶에 매우 큰 부분으로 다가왔다.
2개월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하나요?'였다. 사실 독서모임을 따로 가본 적 없이 바로 독서모임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잘 몰랐었는데.. 보통은 같은 책을 선정해서 읽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1화에도 짧게 이야기했듯이, 모임을 처음 만들 때 내가 정했던 규칙은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임 공지는 언제나 시간과 장소만 적혀있을 뿐 어떤 책을 읽고 와야 하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이 귓속말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어떤 책을 읽고 가야 하나요?'였다. 지금은 '지정 독서 정모'라고 해서 두 달에 한 번씩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각자 다른 책을 읽고 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여전히 처음 오시는 분들이 이따금씩 묻곤 한다. '책은 아무거나 가져가면 되나요?'
독서모임에서는 꼭 같은 책을 읽어야 할까? 물론 같은 책을 읽는 데에서 오는 깊이 있는 대화는 각자 다른 책을 읽고 모여서는 맛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책의 내용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책 전반의 내용을 설명하는 불필요한 시간은 생략할 수도 있고, 같은 내용에 대한 다른 견해가 더 깊이 있고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For me에서도 몇 명의 사람들은 일부러 같은 책을 골라서 모여본 적도 종종 있었다. 사전에 정모 신청을 받을 때 책도 함께 적는 For me의 특성상, 다른 사람이 신청한 책을 함께 신청하고 읽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놓치곤 했던 부분을 이야기하거나, 나와는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는 회원들 덕분에 그 재미가 더 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or me의 제1 원칙은 여전히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독서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음식이 있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다르듯이, 음식보다도 더 많은 종류의 책이 있기에 독서 취향 또한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그 말인즉슨, 모든 사람이 읽고 싶은 책이란 것은 없다는 뜻이다.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읽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있을까.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책장이 날개 치듯 넘어가고, 뒤 내용이 궁금해서 어서 읽고 싶어 안달이 나야 비로소 '아. 이 책 참 재밌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이걸 언제 다 읽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책은 도저히 손이 가지를 않는다.
For me의 4번째 정기모임의 참석자는 5명, 책 또한 5권의 책이 모였다. 에세이, 소설, 인문학, 고전, 자기계발.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분야도 주제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잘 모르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나요?' '주제가 다르면 대화의 흐름이 뚝뚝 끊기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부터 그래왔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러하듯이, 언제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라면 하나뿐이다. 우리 독서모임에서는 책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가져갔던 책은 '진작 할걸 그랬어'라는 책이었다. '진작 할 걸 그랬어'는 전 MBC 아나운서였던 김소영 아나운서가 퇴사 후 일본 여행을 다니며 일본의 책방들을 돌아본 '책방 여행기'이다. 단순히 책방 여행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굳이 단어를 찾아내자면 그렇다. 그리고 그날 모임에서 내가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설명은 딱 방금 글로 썼던 내용뿐이었다. 미리 써두었던 내용이기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250페이지의 책을 설명하는 데에는 10초 남짓의 시간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했던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였다. 쉽고 전달력 있는 문장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최근의 바쁘고 여유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담담하고 여유로운 그 문체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다주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어떤 결심을 했고, 어떤 것들을 시작했는지. 책보다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이야기했다.
For me의 모임은 늘 그런 식이다.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순히 책 속에 있는 멋진 문장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꽂힌 문장이 대체 왜 나를 그렇게 감동케 했는지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는데 필요한 부분만 소개를 한다. 책이 건네는 교훈적인 메세지보다는, 그 메시지가 내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저 내 이야기를 쏟아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책 앞에서 내가 마주했던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건넨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똑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대화가 책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이 달라도, 주제가 달라도 상관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주제 말이다. 삶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생각, 가치관, 신념, 취향, 이상. '나'의 내면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서로의 일상도, 직업도 잘 모르지만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내면을 가진 사람인지는 서로 잘 알게 된다. 각자의 '삶'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유대감이다. 책을 통해 모였지만 책이 아니라 사람을 이야기하는 곳. 독서모임 For me는 바로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