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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Jul 26. 2023

기록이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이고양의 콘텐츠 리뷰] 책 / 나를 리뷰하는 법 / 김혜원


인간과 다른 동물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심리학자인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는 인간의 '보존 능력'을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았다.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첫 번째가 '혁신'이고, 두 번째가 '보존'이다. 혁신은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 앞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고, 보존은 그 혁신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게 함으로써 발전이 후퇴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허락되지만, 뒤로는 밀려나지 않는 래칫의 원리를 따서 래칫 효과(ratchet effect)라고 불린다. 


마이클 토마셀로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 '혁신'과 '보존' 중 '보존'에 있다. 어떤 동물들, 특히 영장류는 문제해결능력을 떠올리는 것에 있어서 때때로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뛰어난 해결책은, 결코 이어지지 않는다. 해결책을 떠올린 개체가 죽고 나면 잊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더 뛰어난 해결책, 더 발전된 아이디어, 더 고차원의 사상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그것을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이 죽더라도 잊히지 않고 인간 사회에 오래 남아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그것을 뛰어넘는 혁신이 일어나며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인간만이 '기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 정점에 위치한다는 인간의 위상은 순전히 '기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기록하였기에 후퇴하지 않을 수 있고, 그 기록을 곱씹었기에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인류라는 거대한 흐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기록하기에 나는 실패를 곱씹고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기록하는 자의 삶은 반드시 더 나아질 수밖에 없다.




기록은 어쩌면 발악에 가깝다. 지나가는 시간 한 줌 까지도 놓치기 싫다는 발악. 흘러가는 생각 한 줄까지도 놓칠 수 없다는 발악. 시간이 아까워서 우리는 그렇게 발악하듯이 기록을 해나간다.


모든 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가고, 모든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질되어 간다. 그래서 지금의 순간도, 지금의 생각도, 서서히 사라지거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과 생각들이 활자를 통해서 새겨지면, 그들은 더 이상 희미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은 채 그 시간에 못 박히게 된다. 



김혜원 작가의 책 <나를 리뷰하는 법>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 자신을 기록할 때에 비로소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 따라 하고 싶어 지게끔 말이다. '기록'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기록'을 하고 싶어 지게 만든다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은 명작의 반열에 올라 마땅해 보인다.


재밌고도 좋은 점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이 100명이라면, 100명 모두 각기 다른 방식의 기록을 할 것 같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방식의 기록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짓수가 놀랄 만큼 많아서 한 사람이 이 모든 방법을 동시에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아마 작가도 이 모든 방식을 동시에 하고 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들을 하나씩 소개한 것일 테지.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도 모든 것을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 하나를 따라 해보거나, 혹은 나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시도해 보겠지. 


이 책을 먼저 읽고 추천해 주었던 홍토끼는 '장소를 기록하는 것'에 마음이 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 책을 읽은 나는 '기록이 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다. '주간 이고양 리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콘텐츠 리뷰'를 시작하게 된 것도, 연애를 하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남겨두기 위한 '연애상담소'를 시작하게 된 것도. 모두 이 책과 홍토끼의 조언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의 방법을 하나도 따라 하지 않는 셈이지만, 이 책의 작가는 나의 기록방식을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방법이 아니라 기록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져왔으니까 말이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참 놀라운 행동이다.

우리의 좁은 머릿속에 다 넣지 못한 순간과 생각들을 지면 위에 옮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록된 지면에는 우리의 행복이, 우리의 슬픔이, 우리의 고민이, 우리의 좌절이, 우리의 추억이, 우리의 상실이, 우리의 만남이, 우리의 희망이, 그리고 우리의 과거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록을 다시 펼쳐볼 때마다, 하루 전의 나, 한 달 전의 나, 일 년 전의 나, 그리고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나는 조언과, 위로와, 꾸짖음과, 칭찬과, 격려와, 다그침을 건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나아졌느냐고. 


그래서 우리의 기록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던진 질문을 오늘의 내가 대답하는 것이며,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질문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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