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양 Sep 13. 2023

같은 시간도 다르게 흐르니까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주간 이고양 리뷰 (09.02~09.10)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주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주간 이고양 리뷰'.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올게요~


라고 썼으면서 이번에는 한 달 만에 그것도 수요일에 돌아왔다.



[23.09.02 토요일 - 맛집 주인이 이 일기를 싫어합니다.]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새로운 맛집을 찾는다. 친구네 커플은 매주 반드시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야만 제대로 된 데이트라고 한다. 맛집이 잘 되는 이유가 다 이런 사람들 덕분인 거다. 동네 맛집이 아무리 맛있어봐야 그 동네 사람들만 오면 그렇게 긴 줄을 서 가면서 먹을 일이 있을까? 그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멀리서도 그 맛집을 찾아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홍토끼도 맛집 흥행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맛집은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말하는 유명한 맛집'이 아니라, '우리가 먹어본 식당 중에서 그 메뉴를 가장 잘하는 집'일뿐이니까. 우리가 굳이 새로운 식당을 가는 경우는.. '어떤 메뉴가 먹고 싶은데, 우리가 아는 그 맛집과 오늘의 일정이 거리가 멀 때' 일 것 같다.


우리 커플이 식당을 정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번 주말에는 어떤 메뉴를 먹고 싶은지를 떠올린다. 그다음에는 그 메뉴가 맛있었던 식당을 기억해 낸다. 끝! 그러면 이제 그 식당을 가면 되는 것이다. 가끔 그 식당이 휴일인 날이거나, (왜 그렇게 토요일과 일요일이 휴무인 식당이 많은지 모르겠다.) 혹은 일정상 그 식당과 먼 지역에 가게 된다면, 그제야 그 지역에서 해당 메뉴를 파는 식당을 찾아보는 식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글쎄? 우리처럼 익숙하고 편안할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엄청나게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식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오늘의 식사에 지난 식사의 즐거움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이곳에서 먹으며 맛있고 즐겁고 행복했으니까. 그때의 추억이 덧씌워져서 오늘의 식사가 한층 더 맛있어진다.


그렇게 지난번의 추억까지 더해져 오늘도 역시 맛있게 먹었던, 대전 신세계백화점에 있는 서리재.

(서리채라고 우기다가 틀려서 홍토끼에게 혼났었다)


서리재에서 가장 맛있는 직화 고추장 제육 솥밥. 솥밥을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딱 맞는 메뉴다.

아 오늘도 배 터지게 먹었다.



[23.09.09 토요일 - 같은 시간도 다르게 흐르니까]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지만, 모든 사람의 시간이 같은 밀도로 흐르지 않는다. 똑같은 일주일을 보냈어도 누군가에게는 다채로운 삶이 펼쳐지지만,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의미 없는 1주일이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의 밀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했는지를 시간의 밀도라고 생각한다. 정말 바쁜 1주일을 보낸 사람의 시간이, 침대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보낸 사람의 시간보다 밀도가 높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분주함이 시간의 밀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시간의 밀도를 그렇게 측정하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오류가 생기게 된다. 하루의 밀도는 그렇게 분주함에 따라 측정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주일정도까지는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낸 사람이 시간의 밀도가 높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 달은 어떤가? 일 년이 되면 어떨까? 우리의 지난 1년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1년 뒤의 내가 지금의 1주일을 생각하면 바빴던 것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시간의 밀도를 측정하기에는 바쁨은 별 관계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의미해지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시간을 밀도 있게 만들어줄까? 나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붙잡아 기록해 두면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나의 시간이 채워지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시간은 밀도가 높아진다. 내 시간들을 기록하지 않을수록 나의 시간은 밀도가 옅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기록하지 않은 채로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사라질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일주일 동안 홍토끼와 나 중에서 더 바쁜 사람은 나였지만, 정작 나의 시간은 밀도가 매우 낮았으며, 상대적으로 덜 바쁜 홍토끼였음에도, 홍토끼의 시간은 아주 밀도가 높았던 것이다. 아 부러워라.


무슨 말이냐면 지난주 토요일에 홍토끼와 밥 먹는 일기를 써놓고서는, 그다음 일기가 바로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의 식사 일기라는 것이다. 이곳은 세종시에 위치한 '올리부스'. 지난주의 '서리재'에서부터, 지금의 '올리부스'까지, 나는 분명 바빴음에도 아무것도 기록에 남기지 못했던 나의 시간은 공백이나 다름없다.

음식 사진은 없다. 이 와중에도 일이 바빠서 정작 음식이 나왔을 때는 업무상의 통화중이었었으니까.. 일이 바빠질수록 내 시간은 옅어지는 것이었다. 이걸 이제야 깨닫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답게, 어른답게, 쉽지 않은 삶이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