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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Oct 29. 2024

선함과 악함

오늘의 에필로그

우리 모두는 선함의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

선한 사람은 그 선함에 대하여 언젠가 보상을 받을 것이며

악한 사람은 그 악함에 대하여 언젠가 대가를 치르리라

그러한 권선징악의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박혀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선함을 추구하고 악함을 멀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인생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우리는 알게 된다.

언제나 선은 어렵고 악은 쉽다는 것을.

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추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반면

악함은 멀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절제하고 참아내야만 한다.

마치 우리의 본성이 악함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이 말이다.

악함을 밀어내고 선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악함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선함은 계속해서 멀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함은 어렵고 악함이 쉬운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것은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올바름을 우리는 선함이라고 부른다.

단 한 명의 타인이라도 나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을 우리는 악함이라 부른다.

모든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선함과

단 한 명에게만이라도 악인이 되면 되는 악함.

무엇이 쉽고 무엇이 어려운지는 그 기준의 차이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선함은 불가능한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악함은 당연한 것이다. 

선함은 그저 이룰 수 없는 목적을 향해 평생을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게 만드는 감옥이며

악함은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으로부터 스스로의 마음을 좀먹게 만드는 족쇄이다.


그렇다면 선하게 살 필요도 없고, 악함으로부터 멀어질 필요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선함을 추구하고 악함을 멀리하는 것이 맞다.

그저, 절대적인 선함이 아니라 최대한의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악함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악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설득력이다.

나의 선함이 모두에게는 선하지 못할지라도, 많은 이들이 그것은 선함이라고 인정할 만한 설득력

나의 악함이 누군가에게는 악마 같을지라도, 많인 이들이 그것이 악함은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설득력

그 설득력은 논리와 말로 표현되고 정리될 수도 있지만

가장 강한 설득력은 지나온 삶의 시간 속에 채워져 있다.


나의 지난 삶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갖추어져 있을까?

선함을 향한 나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함으로 납득될 수 있을까?

악함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노라고 납득될 수 있을까?

그 답을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결국 내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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