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내가 제일 먼저 평가하겠어

흘러간 서사시 01 + 월간 서사시 2509

by 이고양

01.


시간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그 강 한 가운데에 꼿꼿이 버티고 있는 바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그저 나를 지나쳐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갈 뿐이다. 모든 순간은 지금이 지나면 과거라는 이름의 바다로 흘러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모든 지나간 시간이 뒤엉켜 하나의 커다란 대양이 되어버린 곳. 지나간 시간 만큼 커다란 그 바다 안에서, 우리는 옛 추억을 멋대로 상상하며, 기억을 꺼내온다 착각할 뿐이다. 추억을 기억해내는 것은, 사실 상상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흰 종이 위에 써눌러진 글자들은 마치 못처럼 시간을 종이 위에 붙잡아 두는 힘이 있다. 하나의 못이 되어 박힌 활자 아래에 시간은 박제되어 버린다. 마치 곤충표본처럼, 꿈틀대는 시간은 점점 굳어져 종이 위에 하나의 서사로서 남겨지는 것이다.


그렇다. 시간을 붙잡아 남기는 행위는, 그것이 서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저 오늘 일어난 사건의 나열은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나열된 데이터는 그저 데이터 그 자체일 뿐이다. 아무런 의미를 맺어내지 못하는 데이터 또한 마찬가지다. 데이터 그 자체로는 아무리 방대하고 다채로울 지라도 서사가 완성되지 않는다. 그 데이터의 서사는 기록자의 의지로서 완성된다.


저 먼 옛날, 밤하늘의 별의 위치를 매일 기록하는 것은, 그저 미친 사람의 쓸모없는 데이터 수집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말이다. 그러나 그 기록의 여정은 별의 움직임을 수식화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사상의 오류를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하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내는 위대한 서사를 맺어내었다. 그것은 시대가 기록한 하나의 서사였다. 별의 위치가 그저 무의미한 데이터가 아니라 믿었던 초창기의 위대한 기록자들의 의지가 시대를 지나 전달되며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이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 의지로 완성되는 거대한 서사를 나 또한 쓰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으로서, 개인의 삶에서 완성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서사를 맺어보려 할 뿐이다. 모든 개인에게는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할 기회가 주어진다. 평생을 거쳐 크고 작은 서사들을 쌓아올리면, 시간 속에 나열된 그 서사들이 하나의 시를 이루어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노래하는 것이다. 우리의 서사시는 죽음으로서 완성된다.


사전적 의미의 서사시는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스케일로 다루어지고, 고대의 영웅들이나 신화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로 의미하지만, 사실 그건 서사시라는 표현의 지나친 범주화에 불과하다. 그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읜 자신만의 서사시를 가지고 있다. 그 서사시가 개인의 죽음 이후에도 남아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위대한 사람의 서사시는 타인에 의해 기록되고 정리되며 의미가 부여되고 서사시로서 완성된다. 그들의 업적은 모두가 칭송하기 바쁘고, 감추어둔 작은 서사들 마저도 드러나고 부여되어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 서사를 완성시키는 힘은 그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위대한 업적에 매료된 타인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람의 서사를 완성시키고 기록하고 남기고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업적은 극히 소수의 인간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애초에 극소수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업적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업적을 이루지 못한 대다수의 인생은 그저 몇몇 지인들에게 회상되는 초라한 서사시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지인들마저 세상을 떠나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삶이 될 뿐이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서사시가 수십억이다.


나의 서사시를 그렇게 사라지게 둘 생각은 전혀 없다. 위대한 업적을 남길 욕심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정도의 현실 감각도 있다. 그리고 사실, 나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가 함부로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나의 서사시는 내가 써 내려가야겠다.


- 흘러간 서사시 01. 나의 삶은 내가 제일 먼저 평가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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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


자고로, 백로(白露) 즈음에 비가 내리면 풍년, 서리가 내리면 흉년이라 하였다. 농작물을 수확하기 직전,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농작물에게 단비가 내리느냐, 찬바람을 쏘이느냐에 따라 한 해의 농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다 옛말이다. 이제는 백로가 지나기 전에 서리가 내릴 일 따위는 없다. 8월의 무더위는 9월의 절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제 자리인듯이 버티고 서 있으며, 단비가 아니라 때 늦은 장마는 농작물을 시들게 만들고 있다.


교육 또한 농사와 같은 것이라서 그런걸까? 이 모든게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늦더위가, 그리고 늦은 장마가 나를 자꾸 시들게 한다. 아주 지쳐버리게 만든다. 재원중인 학생들은 열심히 해주고 있고 실력도 잘 오르고 있는데 신규 등록 소식이 없어진지 너무 오래되었다. 마치 나무는 점점 튼튼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데 정작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히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지금 당장 수확할 열매가 없으니, 그저 초조할 따름이다.


다행인 것은 좋은 가지들이 새로이 또 뻗어나왔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에게서 날아오는 100점 소식과 성적 상승 소식. 이 좋은 가지를 어떻게든 잘 가꾸어서 또 다시 새로운 열매를 맺어야 하는 입장이다. 교육은 이렇게 쉬운데 운영은 너무 어렵다. 잘 가르치기만 해도 잘 되면 좋을 텐데, 잘 가르치는 것 만으로는 안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어려운 밭이, 바로 여기 학원이라는 전장이다.


정신없는 학원생활의 여파로 소홀해진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이다. 세밀하게 구분하자면 독서라는 분야 중에서도 종이책을 멀리하는 것이다. 독서(讀書)라는 한자의 '서(書)'는 '글 서'자로 책이 아니다. 글을 읽는 행동은 모두 독서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독서를 멀리한 적은 없다. 어떠한 형태로든 이야기를 읽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으로서 다향한 형태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사라질 수록 간편한 형태의 이야기를 선호하곤 한다.


예전을 돌이켜보면 아무리 바빠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책을 읽을 시간을 만들곤 했는데, 이제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책보다는 오디오북이나 라디오 형태의 이야기를 섭취하고 있다. 물론 책이 더 우월한 매체인 것은 아니고, 접근성이 편리하다고 해서 이야기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이상 다시금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달의 가장 큰 이슈라면 이슈였던 카카오톡 대규모 (쓰레기) 업데이트.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옛 독서모임 구성원들의 일상을 잠깐 엿보게 되었다. 다들 책은 잘 읽고 있을까? 책으로 맺어진 인연인지라 그거 말고는 딱히 궁금한게 없더라. 나라도 잘 읽어야지.


- 월간 서사시. 25년 9월호. 사실 나도 초조함을 느끼는 사람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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