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처자 읍에서 살아남기
“어이구, 그니까 뭣 헌다고 거길 가냐. 뭐 볼 것이 있다고. 읍은 달라. 아니, 얘가 대전 출신이잖아.” 친구는 나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로 퉁박을 주었고, 옆에 있는 남편에게 내가 이렇게 잔뜩 쫄아든 이유를 광역시 출신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대전 출신이라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대전에서 보낸 시간은 9년 정도로, 인생의 1/3 정도를 그곳에서 보내긴 했지만 그곳은 나의 출생지도, 생에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긴 곳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대전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적지 않은 횟수로 이사를 다닌 탓에 다른 도시에서 보낸 시간도 얼추 그 정도는 되고, 그보다 짧은 시간을 보낸 장소에 더 많은 추억과 애착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이제는 출장을 갈 때나 들릴 뿐, 감정이 부재한 장소에 다시 발 붙일 일은 없을 것이니 분모는 자꾸 작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반박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시에서 곱게 자랐다는 걸.
통영과 거제에서 성공적인 여행을 마치고 한창 자신감이 올라있었다. 그간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한 곳에 머물면서 푹 쉬면서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전에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게 목표였다. 다른 도시에서와 같이 어딜 가야겠다는 계획을 미리 짜둔 것은 아니어서 이틀쯤은 동네 카페나 슬렁슬렁 돌아다니며 여유롭게 보내고, 마음이 내키면 절이나 한두 군데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게 오롯이 익어가는 벼뿐이었을 때, 뭔가 잘 못 됐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읍내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한다는 숙소는 시속 90km로 달려야 하는 거리였고(읍내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가기 위해서는 가로등 하나에 의지해야 했으며(다시 한번, 읍내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다), 지도에서 봤던 적지 않은 수의 식당과 카페를 빙자한 식당은 모두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읍내에 숙소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바나나 우유와 집에서 가져온 견과류가 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폭우 속에서 잔뜩 긴장하며 4시간 넘게 달려와 녹초가 된 나는, 다시 읍내로 나갔다간 저번처럼 가만히 있는 뒤차를 박기 십상이라 생각하며 바나나 우유를 천천히 한 모금씩 끊어마셨다. 마지막 남은 식량처럼. 이후 집콕의 날들이 이어졌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베갯머리가 창으로 향한 탓에 밤이면 풀벌레 소리와 비가 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그대로 귀에 꽂혔다. 명상 앱에서 틀어두는 옥수수 밭 소리와 빗소리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울림이었다. 밤새 두 시간 간격으로 깨고 낮이 되면 블라인드를 친 채 반대쪽으로 머리를 두고 세 시간씩 잠에 빠졌다. 때마침 폭풍이 북상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배민에서는 무엇을 검색해도 ‘텅’이라고 떠서 겨우 읍내에 기어나가 파리바게트에서 샐러드며 샌드위치, 레토르트 식품을 쟁여왔다.
2층짜리 단독주택 숙소도 스트레스였다. 너무 넓은 게 문제였다. 부엌에는 8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거기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으면 정말 여행지를 잘 못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길 작가라면 분명 이곳을 배경으로 멋진 스릴러를 쓸 수 있을 거였다. 방에 혼자 있으면 더 무서워서 나는 거실 겸 부엌에 나와 그 식탁에서 밥을 먹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친구와 그의 남편은 내가 하루 종일 숙소에서 책을 읽고 끼니는 냉동 슈림프 로제 리소토로 해결했다는 말에 그러려면 서울에서 있지 뭐하러 거기까지 갔냐며 웃었다. 그러게요 제가 여기서 뭘 하는 걸까요…. 2층에는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이 묵었는데 살다 살다 층간소음에 감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밖에 차 대는 소리가 들리면 마주치지 않게 얼른 방으로 들어갔지만 목조주택에 조금씩 울려 퍼지는 말소리, 위층의 걸음걸이 같은 것이 위안이 되었다. 그것 외에는 책과 나의 시간이었다. 밤이면 캄캄하게 변할, 익어가는 벼를 옆에 두고서.
면에서의 시간이 끝나자 나는 시로 도망쳤다. 가장 가까운 광역시는 읍에서 겨우 1시간 반 거리였다. 낮부터 도로를 꽉 메운 차들, 익숙한 미세먼지.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숙소로 잡은 에어비앤비는 원룸형 오피스텔이었는데 고개를 돌리면 한눈에 모든 공간이 파악이 되니 그 역시 좋았다. 도시에 온 나는 금세 가뿐해졌다. 무엇을 먹을까 찾아보는데 세상에 식사뿐 아니라 비건 디저트도 배달이 된다. 도시 최고야! 도시 만세! 그러고 보니 지난 여행지였던 통영도, 거제도 모두 시였다. 숙소 앞엔 먹자골목에 카페가 즐비하고, 골목을 꺾으면 책방과 미술관이 있는 곳. 15분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있고, 거기서 또 10분을 걸으면 갈만한 관광지와 크고 작은 마트가 발에 차이고도 남는 곳. 돌이켜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였던 할머니 할아버지 댁도 모두 시였다. 휴가철에 하루 이틀 머물고 온 자연휴양림이 좋다는 것만 기억하며 읍면리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떡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나는 문명의 이기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나는 휘황찬란한 불빛을 옆에 두고 잠에 들었다. 암막 커튼이 있었지만 굳이 빛을 가릴 생각도 없이 오래오래 도시의 불빛을 쳐다보았다. 내 키보다 훨씬 큰 높이의 한방병원 광고, 빨간색으로 빛나는 호텔을 빙자한 모텔 간판, 점점이 하늘을 수놓는 아파트의 불빛들. 안도감. 혼자 막무가내 여행을 떠났던 내가 걱정되었는지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생사를 확인해주었다. 소파에 반쯤 기대 누워 전화를 받자 내 목소리가 한결 편안해졌다며 웃음을 터트린다. 야, 읍은 달라. 화순은 광주 옆에 바로 군이 붙어있으니까 어두운 걸 본 적이 없지만 담양만 해도 낮에 관광객들 다녀 가고 나면 밤엔 깜깜해. 차라리 담양을 가지 그랬니. 나는 맞아, 네 말이 다 맞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여행지도 군인데 괜찮을까? 그래도 거긴 독일마을도 있고 관광객도 많다던데, 하며 미리 걱정하는 나에게 거기도 비슷할 것이다, 하고 읍 출신의 친구는 넉넉하게 말했다. 아, 서울 쥐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