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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Aug 08. 2020

시詩라는 걸 써봤습니다.

시인이 꿈이었던 회사원의 시작詩作법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겐 비밀 같은 것이었어요. 놀림거리가 될 것 같았거든요. 창피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까봐 두려웠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시를 읽는 것, 그리고 시를 쓰는 것 모두가 그때는 혼자만 알고 싶은 저만의 모습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무도 보여주지 않은 자작시를 친구에게 들켜버린 날, 그저 끄쩍거린 것이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저의 시를 끄적거린 것으로, 그러니까 버려도 상관없는 낙서 정도로 취급하면서 환히 웃었죠. 너무도 환했던 저의 웃음은 깜깜한 방에서 갑자기 켠 형광등처럼 창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詩란건, 낯선 것이었으니까요. 언젠가 무심하게 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떤 이는 제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우울한데다 돈도 안되는  한 글자로 말하면 시라고요. 사실 저도 부정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몇몇 시를 내보이면 대개 반응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쓸데 없이 왜 이렇게 어두운 거냐고.


그래서 인정받고 싶었나봐요. 등단을 하면, 비로소 시인이 되면 시를 읽고 쓰는 일이 정상적인 일로 여겨질 것 같았습니다. 더이상 쭈뼛쭈뼛 머뭇대지 않아도 간밤새 눌러 적은 단어와 문장이 온전하게 읽힐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몽당연필 같이 짤막하고 사소한 저의 바람은 뭉게뭉게 조금씩 형태를 이루며 꿈이란 한 글자가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올해처럼 비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애저녁 서울의 높은 곳에 올라 넘실대는 한강과 강변을 끼고 도는 북로를 바라보며 적었습니다. 가물고 검은 꽃 핀 바다를 종단한다/ 가지 못한 것들에는 거적이 덮혔다/ 헐벗은 파도는 조용히 옷가지만 챙겨 나갔고, 공란으로 남겨진 비석이 많았다/ 나는 포말에 흩어진 토막난 나무며 짝 없는 신발들을 주워다가 한 곳에 모아 묻었다/ 비가 내린다/


그해 여름은 그해 겨울을 지나 이듬해 겨울이 될 때까지 길었던 것 같습니다. A4 용지에 인쇄한 몇몇 편의 시를 우체국 서류봉투에 조심히 넣어 꼼꼼히 풀을 칠했습니다. 그것이 편지라면 답장을 바라는 편지였고 그것이 노래라면 답가를 기다리는 노래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해 겨울이 이듬해 여름을 지나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을 때까지도 제게는 어떤 답장과 답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날 어떤 이들의 등단 소감과 심사평이 줄을 이룬 신문을 훑어보고 폐지함에 넣었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당일특송으로 보냈던 저의 시도 운이 좋다면 폐지함에, 그렇지 않다면 파쇄기에 갈려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분했었나봐요. 그렇게 고이 여긴 저의 시를 저조차도 버려져도 상관없는 낙서 같은 것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견디기가 어려웠어요. 그땐 참 아팠습니다.


이별마냥 남남처럼 살았지만 서점 한 구석 시집을 모아놓은 매대에 서 성의없이 몇 장을 훑어보고 내려놓는 일은 잦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영화를 보게 됐어요. 두 명의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명은 말했습니다. 전 시라는 걸 좀 쓸 줄 알아요. 다른 한 명이 답했습니다. 나한테는 시가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시詩예요, 언니가.


시라는  쓸 줄 아는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시를 하나 적어줍니다. 오래전 당신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돌아오라고 손짓하던 고향은 당신 대신 늙어가고 있어요/ 백두산이 슬픔으로 반백이 되고/ 천지 안에 눈물이 마르기 전에/ 당신을 그곳에 데려주고 싶어요/ 당신을 보낸 나는 떠나지도 남지도 않겠지만/ 백두산의 안개를 밀어내는 건 또 다른 안개이듯/ 천지의 물을 흘려보내는 건 또 다른 물이듯/그리움을 밀어낸 그리움의 자리에 제자리 한 뼘쯤 나지 않을까요/


장률 감독의 영화 <춘몽>에서 언니가 시詩라 말한 주영(이주영 粉)을 보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문장이 채 되지 않는 몇몇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마침내 마침표를 찍어봤던 어떤 밤이 기억났고, 적어도 내게는 마침내 시가 된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어떤 밤도 기억났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시라는 건 시를 쓰는 행위만으로도 시일 수 있겠다고요.

요즘 저는 시詩라는 걸 쓰고 있습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런 저런 문장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넣습니다. 한강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몇몇 단어에 어쩔 땐 형용사를, 어쩔 땐 서술어를 붙여 혼잣말을 해봅니다. 함량 미달의 진부한 문장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아주 가끔 가슴 뛰는 문장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저는 시라는 걸 조금은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축시를 부탁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신랑과 신부,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시를 낭독했습니다. 저는 더이상 저의 시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축시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애써 싹을 틔운 해바라기는 6월에 꽃을 피운다/ 정직한 걸음이 모든 것인 것처럼 길을 걷는다/ 담벼락 끝 힘겹게 핀 꽃도 그렇다/ 그래서 모두들 아름답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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