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했다

나의 예민도와 우울증약

by 드레스 입는 엄마

나도 한 예민함 하던 여자였다.

말한마디에 꽁하고 잠못이루고 울고불고 서운해하던.


우리 첫째는 그런면에서 날 닮았다.

셋째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화장실을 못가서 팬티에 싸대고

엄마의 말한마디도 곱씹고 곱씹어서 예상치못한 상황일때 "엄마도 ****라고 한적있잖아!" 라고 내뱉는다.


하루 지나서 곱씹어진건 이해라도 하는데

가끔은 일년전 이야기를 어제처럼 하면서 분개하면

나는 사과를 해야하나 내려놓으라고 화를 내야하나 혼란스럽다.


그나마

얼마전까지,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 이해 아닌 이해를 한다만

나도 매번 사사건건 아팠었는데 내 자식도 사사건건 아플 생각을 하니 안쓰럽다.


옛날에 나는 기억력이 유별나게 좋았다.

친구들 전화번호와 집주소도 외우고, 베스킨 아이스크림 메뉴이름도 전부 다 알았다. 쓸데없이 기억력만 좋아서 피곤하기까지 했는데

셋째를 낳고부터 우울증약을 먹어서인가

아니면 육아로 정말 정신이 없어서인가

나는 이전의 기억력을 많이도 잃었다.



지능에는 전신마취가 안좋다더니

전신마취 몇번으로

머리가 나빠졌나..


아무튼 기억력이 전보다 좋지 않아져서

뜻밖에도 나의 행복지수는 올랐다.

싸웠어도 돌아서면 내가 잊으니, 나혼자 인사도 잘하고 기쁜 마음으로 반기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찌 보려나 걱정되긴 하는데

아무튼 나의 행복지수는 올랐다.


우리 아이도 예민한 만큼 기억력이 유난히 좋다.

세세한 기억들이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망각은 신의 축복이랬는데.


문득, 매번 인상찌푸리던 시고모님이 치매걸린 소식을 듣고 찾아뵙던날이 생각난다.

매번 화만 내시던 분이었는데 치매에 걸리니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보는내내 웃고계셨다.

가족들은 괴로우실지 모르겠지만, 제3자인 내눈에 시고모님은 이제서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치매걸린 시고모님이 행복해지셨고

나조차도 나의 망각을 축복이라고 느끼고 있다.


아이들 학교보낼 준비를 하면서, 기억력이 유난히 좋은 첫째를 둘째가 부러워한다.

조금만 공부해도 기억을 다 하니까 그게 부러운 모양.

첫째는 별의별걸 머릿속에 다 넣고다니느라 웃을일이 잘없는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둘째는 공부는 조금 늦지만 행복한 아이같다.


둘을 보면서 망각은 신의 축복이 맞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거같기도하고 여러번 고민하게 된다.


아무튼 나는 요즘, 잘 잊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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