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산 명품백은, 우리 엄마 것이었다.
그 가방을 사려고 나는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딸이 일 년 치 적금 통장을 내밀며 명품 가방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예산보다 더 비싼 걸 고르셨다.
통장 안에 있던 돈이 깨끗하게 털렸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이상한 일인지도 몰랐다.
우리 엄마는 모태 막내였고 나는 K장녀였으니까.
엄마가 귀여움을 떨면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제들이 딸처럼 예뻐해줬다.
그래서 엄마는 딸에게도 가끔 귀여움을 떨었다.
나도 나름 서운한 점이 있었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도 했다.
우유 배달을 하시던 엄마는 내 수능날에도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을 사다 주며
“도시락은 이거면 되지 않냐”고 하셨다.
그날 나는 친구들의 으리으리한 도시락들 사이에서
묻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나는 김밥을 좋아해서.”
그렇게 수능을 치고 온 직후에는
엄마의 우유 배달 심부름을 다녀왔다.
싸운 친구 집에 배달을 대신 가라고 했을 때는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나 걔랑 싸웠다고.”
소리를 빽 질렀다.
충실하게 착한 딸은 소리를 지른 것도 미안해서
결국 심부름을 다녀왔다.
여전히 엄마는 딸에게 귀여움을 떤다.
전화로 아빠 욕을 하기도 하고,
되도 않는 꽃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되고 나니
나는 엄마의 귀여움이 가끔 버겁다.
우유 배달부 복장으로 동네를 활보하던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고
나는 드레스를 찾아 입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엄마를 많이 닮은 딸이다.
요즘은 웃음소리마저 엄마를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내 복장도
우유 배달 복장에 명품백을 멘 엄마나
드레스입고 아이셋 육아를 하는 나나
사실은 다를 게 없다.
그놈의 낭만같은거.
그래서 나는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