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원피스는 죄가 없다

by 드레스 입는 엄마

병원 대기번호 30번.

“서점 가서 기다리자, 엄마.”
“싫어. 조를 거잖아.”
“구경만 할게. 부탁이야…”

쓸데없이 뭉클해져서
서점을 간 내 죄다.

아이 셋은 서점을
제 집인 양 만지고 뛰어다녔다.
“한 권씩만 골라. 만지지 마.”

시작은 나도 우아했다.

셋은 이걸 집었다가
저걸 내려놓으며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 저 위에 책 꺼내줘.”
키가 안 닿는 곳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위층 책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고,
다음 칸을 또 꺼내 보여주고,
제목을 보여주고,

내용이 궁금하다기에
서점 안을 또 누볐다.

그 사이
대기번호 20번, 10번.
내 마음만 졸아드는데
아이 셋은 태평하다.

“아… 그냥 장난감 사야겠다.”
생색내듯 장난감 코너로 가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소리가 올라왔다.
“그냥 병원 들어가!!!”

책과 상관없는 막내는
사탕 하나로 타협이 끝났고,
둘째는 눈치껏 책을 집어 들었고,
첫째는 여전히 서점을 누볐다.

“원하는 책은 인터넷으로 사자.”
“장난감 골라도 돼?”

대기번호 5번.
이걸 놓치면
오늘 진료는 끝이다.

진료 시간을 담보로
장난감을 고르겠다는 녀석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너는 그냥 여기서 살아라.”

서점을 나오는 길,
첫째는 작정한 듯 징징거리더니
마침내 내 손등을 깨물었다.

“그만하라고 했지!!!”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옆의 젊은 여자가
못 본 척하라고 그를 끌고 갔다.
“아이구”

할아버지,
지금 단단히 오해하고 계십니다.

이 집 학대는
엄마가 받는 중입니다.

병원에 들어가니
얼굴을 아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물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
“티 나요?”

머쓱하게 웃어보는데
표정이 어색하다.

오늘따라
꽃무늬 원피스가
어울리지 않게 하늘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뽀로로 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