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 권리
45인승 관광버스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옥산의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튜브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차체의 문이 열렸다. 초가을의 날씨, 휑한 논두렁 가운데 텅하니 물류센터의 간판이 발광하고 있었다. 서울과 대전, 청주에서 도착한 관광버스 총 5대의 차들이 집결했고 일용직들이 모여들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삼태백을 몸소 실천중인 비루한 몸뚱이를 물류센터 한곳에 구겨넣고 초보티를 내지 않기 위해 슬슬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모인인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바람에 밤안개를 연상케 하듯 시야는 뿌옇게 변해있었고, 일용직의 이름을 호명하는 우락부락한 관리자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집결한 사람들의 뒤로는 3층짜리 컨테이너 건물이 숨죽인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움직임을 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생물처럼 소리 없이 서있었다.
"김현남씨! 김현남씨! 김현남씨! 김현남씨 없어?"
세번이나 이름을 호명하고 나더니 그제야 없는 것을 확인한 관리자는 다음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고용보험을 등록하느라 들어간 사무실에서 알게 된 사실은 이 곳이 대기업의 유통계열사가 관리하는 일용직 밑도급 업체가 4곳이나 있다는 것, 제일 초반에 호명된 사람들은 힘깨나 쓸 줄 아는 어깨들이고 여자이거나 체구가 작은 남자들은 나중에 호명되었으며 나와 같은 초짜들은 제일 나중에 호명된다는 사실이다.
밭을 갈기 전 힘쓰라는 의미로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것처럼 100여명이 넘는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밥을 먹는 일이다. 밥을 먹고 나면 각자 위치를 배정받는다. 1층부터 차곡차곡 피라미드를 쌓듯이 대형화물을 나를 수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부터 배치되고 3층의 소형택배를 다루는 곳에 초보자들이 배치된다. 보안상 핸드폰은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누구하나 반박하는 기색이 없이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는다. 한 칸의 사물함에 대략 그날 모인 초짜들을 포함한 스무 명 남짓의 핸드폰이 들어간다. 가방과 겉옷도 한칸에 모두 넣는다. 일용직에게 개인사물함은 호사에 가깝다. 근무복으로 지급되는 것은 안전복이 아니라 풋살할때 팀을 구분하기 위해 입는 조끼 같은 것이다. 알고 보니 색깔별로 초보자는 빨간색, 중급자는 노란색, 상급자는 파란색을 줬다.
빨간색의 조끼를 입고 7명의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소형택배상자의 후반작업장 라인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1층부터 3층까지 지그재그로 연결되어있고 쌀포대, 흔히 마대자루라고 불리는 포대의 50~70퍼센트 가량 화물이 담기면 그것을 케이블로 묶어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태우는 일이다. 택배공장 같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화물들이 마대자루로 쏟아진다. 소형화물이라고 얕보면 어깨를 다칠 수 있다. 책을 비롯한 인쇄물들은 종이무게 탓에 그 무게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게 9시였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환풍구도 없는 컨테이너 건물의 상층부에 그날 일을 배정받은 빨간 조끼 7명. 2명은 20대 초반의 여대생으로 보였고 삼태백인 나를 포함한 내 나이 또래 2명의 남자알바들, 그리고 나머지 2명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그리고 파란조끼를 입은 상급자 3명이 그 라인의 우리를 관리하고 있었다. 체감시간은 2시간 남짓 지나보이는데도 쉬라는 말이 없다. 자세히 보니 포대에 붙이는 스티커를 출력하는데 스티커에 시간이 표시된다. 눈치껏 시계를 확인하니 자정이 넘어가있었다. 일을 시작한지 3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한번도 쉬질 못하고 있다.
1-2kg의 소형 화물이 10개만 보여도 10kg이 넘는다. 그걸 들어 체감무게를 확인하는 작업, 스티커를 뽑아 라벨을 붙이고 케이블을 묶어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태운다. 다시 새 포대를 홈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면 택배상자들이 다시 담긴다. 그렇게 묶어야 하는 포대자루는 1개가 아니다. 그 라인에만 수십여개의 마대자루에 걸린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가 싶은데 파란조끼가 와서 옆에 있던 40대 아저씨에게 쉬라고 사인을 보낸다. 그러면서 "따로 쉬는 시간은 없습니다. 화장실을 잠깐 다녀오거나 물드시고 바로 오세요."라고 말했다.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 드디어 나에게도 쉬는 시간이 왔다. 화장실로 직행했다. 좌변기 칸 앞에 작은 공간에 라면박스를 깔고 여성일용직 근무자들이 쉬고 있다. 쉴곳을 찾아봤지만 휴게실이 따로 없었다. 팔이 조금 후들거렸고 택배상자의 분진들 탓에 목이 조금 칼칼했다. 조금 더 앉았다 가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새벽 4시가 넘어선 시간, 두번째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화장실을 갔던 40대 아저씨가 조금 늦는다 싶었다. 왜 오지 않는걸까. 그리고는 라인 바깥쪽을 봤는데 얼굴이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에 흠뻑 젖은 그 분이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양을 보니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휴식하라는 말도 없이 휘청휘청 라인으로 돌아와 포대자루를 묶었다.
포대자루의 택배상자를 제때에 빼주지 않으면 경고 불이 깜빡이고 라인이 잠깐 멈춘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한사람이라도 빠진 자리를 남은 사람이 매꿔야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날이 하얗게 밝아 올수록 우리 모두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갔다. 한 사람이 쉬러가자 남은 사람이 다시 바빠졌다.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옆자리의 아저씨가 위태롭게 포대자루를 묶었다. 그 때 상급자가 다가와 일 똑바로 해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해 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그때도 그 아저씨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어깨와 발바닥이 내것이 아닌 것 같은 통증이 전해졌다. 더러워서 못 앉을 것 같았던 화장실의 라면박스에 주저 앉았다. 전에 쇼핑센터 건물의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이 개수대 옆에 주저 앉아 가져온 콩떡으로 요기를 하는 것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내 처지가 그때만 못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고 다시 고개를 내둘렀다. 두칸의 좌변기칸 안에서 사람들이 볼일을 보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볼일을 지켜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일지급되는 돈이 좋다지만 이건아니다 싶은 생각에 고개가 절레절레 움직였다. 내일부터 다른일을 찾아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헐레벌떡 물한잔을 들이켜고 라인으로 돌아와 다음사람에게 쉬고 오라고 손짓했다.
앞으로 3시간만 더 버티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어쩐지 이상하다던 옆자리의 아저씨가 돌연 쓰러지며 눈동자의 흰자위를 까집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일단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쓰러졌어요라는 다급한 소리에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몰려들었다. 그때 상급자가 무전을 했다. 그때까지도 아저씨는 방치되어있었다. 아무도 어쩔도리가 없었다. 핸드폰이 없어 119도 부르지 못한채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반장이라는 사람이 달려오더니 쓰러져있는 사람의 양볼을 쳤다. 상황이 위급해 보였다. 반장이라는 사람이 핸드폰을 꺼냈고 119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라인을 정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제때에 빼주지 못한 포대자루마다 상자가 넘쳤고 경고등이 들어왔다. 반장은 우리에게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쓰러졌는데 아무조치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보다는 반장의 말때문에, 정확히는 돈 때문에 택배상자를 날라야한다는 사실에 어떤 괴리감이 들었다.
이렇게 일하고 내일 아침 바는 돈은 여자는 6만원이고 남자는 대게가 8-9만원을 받는다. 물량이 많아 잔업을 하는날에는 조금 더 받는다고 했다. 6만원을 받고 아껴쓴다면 일주일의 식료품비와 교통비 등은 해결되는 샘이다. 먹고 살기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위해 눈 한번 질끈 감아야했다. 얼른 신고하라고 반박하지 못했고, 왜 휴게실이 없냐고 따지지도 않았으며 50분 노동에 10분 휴식시간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말도 뻥긋하지 못했다. 내가 한 것은 옆자리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눈을 질끈 감고 택배상자를 나르는 일뿐이었다.
놀랍게도 30여분 후 그 남자가 돌아왔다. 상급자는 그 남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괜찮겠어요? 라고 물었다. 그 남자는 해볼게요라고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7시까지는 이제 1시간여 남짓 남은 시간이었다. 그간 일한 일당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노심초사한 마음에서 일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걸까싶어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해야 하는가 싶은 광경이었다.
최근 구직을 위해 자주 찾는 워크넷에는 이런 공익광고 글귀가 쓰여있다. '노동개혁은 우리딸과 아들의 일자리 입니다.' 문득 그 문구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개선된 근로환경이 우리 아버지의 일자리가 되길 바란다. 휴게실도 휴식시간도 없는 컨테이너, 그 속에서 보내는 육체노동자의 9시간에 대해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개선의 의지를 가진다면 좋겠다. 먹고 살기, 가장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도 인간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9시간을 보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