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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Nov 20. 2024

어딘가에 있을 답을 찾아서


아이들은 매일 몇십 개가 훌쩍 넘는 단어를 외워야만 했다. 틀린 만큼 손바닥을 맞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잘못 쓴 답에 표시된 빨간 색연필에 마음이 뜨끔하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편, 몇몇 아이들은 몇 개를 틀리든 크게 염려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크게 마음을 쓰는 아이들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묵묵히 답을 매기고 웃는 얼굴로 시험지를 되돌려 주었지만 마음이 괜찮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런 쪽지 시험 같은 게 훨씬 낫다고 농담처럼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듯, 그 나이 때에는 그런 시험들이 자신의 세상 속에서 꽤나 중요하고 진지한 사건임을 알기에 하고 싶은 말을 그저 접어두었다.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이따금씩 정말 남들 말대로 삶이 어려운 문제 풀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딱히 정답이 없기에 오히려 어떤 상황에 대해 크게 열려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들이 너무도 예측할 수 없어 그로 인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과거의 어떤 상황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어느 시절에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한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선택하지 못한 답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갔다. 내가 조금만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꽤나 괜찮았을 결과에 대해 마음 아파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후회 같은 걸 잘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현재나 미래 같은 것을 생각하기에도 벅찰 만큼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짚어가는 행위는 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는 딱히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교훈이 될 만한 무언가를 도출해 낼 줄 아는 현명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내게서 과거의 사건들, 과거의 시간들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 대신,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는 왠지 모르게 확실한 이 느낌은 나로 하여금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게 존재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최선의 선택, 이라는 말 자체는 굉장히 희망적이면서도 간사하다.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든 크게 실망하지 않게 해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앞에서 내 행동의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적당한 핑곗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이 조금은 부정적인 말처럼 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최선의 선택과 그에 따른 말 또는 행동을 자기 스스로가 거뜬히 책임질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선택을 언급함에 있어서 크게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않는 것, 그 대신 그 선택을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고 믿으며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순간, 과거에 연연하는 나 대신 현재를 중시할 수 있는 삶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이런 마음가짐을 행동에 즉각 옮길 만큼은 되지 못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흔들리는 일이 더 많다. 그렇다 해도, 조금이나마 일찍 이것을 깨닫고 조금씩 노력하는 것도 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선택의 문제가 생기고, 아주 확실하게 내놓을 수 있는 정답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동그라미 아니면 가위표로 매길 수 있는 시험지 같은 삶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 낫다고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정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나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어떤 선택의 순간을 누리기로 했다. 오늘도 오늘의 하루를 정리하며 언젠가는 나의 선택이 인생이 마치 답처럼 느껴지게 될 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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