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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Nov 06. 2024

오늘은 그 슬픔을 지워보도록 해



삶이 여러 문장들의 집합체라면, 살아가면서 항상 즐겁고 유쾌한 문장만을 써 내려갈 수는 없다. 하나의 장편소설과도 같은 삶의 이야기 속에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의 감정 모두를 담은 문장들이 이리저리 나열되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한 명의 주인공이 되어 무언가에 만족하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슬퍼하며 삶을 살아간다. 



특히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날들을 겪고 있노라면, 내가 그 기다란 소설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언젠간 이 괴로움이 정말이지 끝나려나 하고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되물어본다. 적어도 여태껏 그랬으니 이번에도 이 힘듦의 끝이 있을 거라 믿어본다. 그렇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내쉬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이 모든 문장들의 조합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슬픔의 순간도 아예 미워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왕이면 좀 더 즐겁게 살고 싶어 한다. 아니면 적어도, 슬픈 감정은 느끼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극단적인 슬픔을 감당하려면 흔히 말하는 '멘털 건강'이 강해야 한다고 여기고는, 그저 유리멘털인 나 자신을 핑계 삼아 그 상황을 회피하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감정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 주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의 몸은 아플 수도 있게 되어 있고,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헤어지게 되어 있다. 영원한 행복은 없고, 지속적인 기쁨 자체는 오롯이 기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언젠가는 슬픔과 맞닥뜨려야 할 운명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슬픔을 더불어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슬픔의 무게를 굳건히 견뎌야만 내가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제 막 닥친 슬픔이란 감정을 어떻게 현명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감정을 다루는 일이 제일 어렵다. 더군다나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줄곧 이렇게 생각한다. 슬픔에 익숙해져 갈수록 작은 일을 좀 더 기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작은 기쁜 일에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은 반대의 감정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완연한 기쁨 속에서는 조그마한 슬픔도 극단적으로 느껴지고, 반대로 슬픔으로 가득한 상태에서는 그것으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도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때로는 슬픔을 슬픔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필요하다면 조금은 속시원히 울어 보기도 한다. 나를 슬프게 한 상황이 현실 그 자체라면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뜯어고칠 수 없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암울하고 부정적인 상황에서 감정을 애써 짓누르지 않되 지금이 가장 나쁜 상황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이나마 상황이 나아지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오히려 그런 슬픔의 상황이 나를 강하게 만들고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한다.



영원히 슬픔의 감정을 피해 다니면서 살아갈 수는 없고, 우리는 나쁜 감정 앞에서도 굳건히 우리를 지켜내야 한다. 사실 나 자신도 슬픔과 마주할 때마다 매번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겪어내고 나면 나는 오히려 즐거운 일, 행복한 일에 더 기뻐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힘듦을 이겨내곤 한다. 여러 감정의 문장들을 주저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동안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지고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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