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어려울 뿐이었다. 주어진 삶과 앞으로 주어질 시간 때문에 우리는 견딜 수 없는 무거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무거운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모든 이 시간들은, 견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있는 것들이 된다.
헷갈리지 않고 정확히 2025를 일기장에 쓰면서 새해를 실감했다. 나는 만 나이로 서른여섯 살, 한편으론 서른여덟 살인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갓 스무 살이 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많아 보이지만, 다른 숫자를 가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많지만은 않은 나이일 것이다. 어찌 됐든,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의 숫자에 감사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 들어 모든 것을 다행이라고 느끼게 된다. 무엇을 하든 적당히,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에 어떤 일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어떤 일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모든 일에 기뻐하지도 않는다. 내게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그런 의미다. 딱 중간에서 그 일이 멈추어 선 것이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기쁘지도 않게 일이 적당히 마무리된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점에 느끼는 감정이 '다행이다'인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사라진다. 평범하게 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나쁜 상황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개 숙여 감사하게 된다. 정확히 누구에게 감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감사함으로 근사한 하루를 보낸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꽤나 건강한 마음으로 살게 한다. 고요한 마음의 울림은 이런 평범하고도 밋밋한 생각을 만나 조금 더 크게 울린다.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