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학생들의 시험기간이 끝났다. 시험기간 내내, 마치 내가 시험을 치르는 듯 시간을 쪼개 열심히 수업준비를 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특정 지식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사치일 만큼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하루 종일의 수업을 담당하는 전임 강사가 아닌, 나와 같은 프리랜서 강사들도 일단 시험기간이 되면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 일해야 한다.
시험기간이 끝나자, 꽤나 버거운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니, 사실은 한창 바쁜 기간에도 내내 불안함에 치어 살았다는 게 맞는 표현일 테다. 일단 현실이 바쁘니 어떻게든 묻어두려 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시간이 잠깐 쉴 틈을 내어준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내 삶 속으로 다시 비집고 들어왔다. 결국 이유라고 할 수 없는 일들조차 이유로 만들어서라도 나를 괴롭히겠다는 그 불안의 감정은 이번 계절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물론 최초의 불안으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이 감정은 견디어 내기 힘든 것이 되었다.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다루기 힘들고, 한 번 시작되면 그것 이상의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도 함께 쏟아진다는 게 문제였다. 불안은 화나 슬픔을 낳기도 하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불안을 항상 못마땅해했고, 그러한 상황이 지속될수록 나는 나를 가두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사실 소용이 없었다.
한창 일이 바쁜 상황 자체를 불안해하던 시점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나 자신이 그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하는 것이냐고. 한 번도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두고두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없거나, 관련 지식에 대해 자신감이 그렇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한참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나는 나 자체를 불안해한다기보다는, 어딘가에 묶인 채 놓여 있는 나의 위치 자체를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혹은 관계 속에서의 나를 생각하는 일은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어려운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가 어느 '역할'이 되어 모두와 상호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 거기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역할에 대한 노력 역시 필요하단 말과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안의 감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 자리에서 좀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과 책임감의 결과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잘 해내고 싶기에, 만일의 실패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조금씩은 안도하기로,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나의 불안을 조금은 받아들이며 나의 살아있음의 증거로 삼기로 하는 것, 그리하여 나의 최선과 나의 노력이 늘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을 삶의 과정으로써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