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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짱이 Nov 16. 2024

읽다 잠들어도 좋아 난.

다시, 소설



택배상자를 열며 예상치 못한 설렘을 느꼈다. 커터칼로 박스를 자른 탓에 안에 들어있던 책이 살짝 긁혔지만, 책을 집어든 내 마음엔 흠집 하나 없었다. 오랜만의 소설책이다! 나는 생각했다. 꽤 무겁고 두툼하지만 예쁜 디자인 덕분에 투박함이 한결 덜어진 책이었다. 



소설을 이것저것 읽었지만,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사실 소설은 지금보다 어릴 때 더 많이 읽었다. 학생 때는 추천도서 위주로 고전소설을 찾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현대소설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아주 흔한 질문인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은 무엇이냐'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소설을 읽고 나도 어렴풋이 줄거리만 기억할 뿐 별다른 감정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주로 인문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데에 열중했다. 어느새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보다 지식의 축적에 좀 더 기뻐하는 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책을 살 때 꼭 소설책 한 권을 끼워넣기로 다짐했다.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의 도서 목록을 뒤적거리는 동안 이 책 저 책에 눈이 갔다. 그러고는 정말이지 소설책 한 권을 골라 카트에 담았다. 그러고 나서는 그 책 한 권만을 주문했다.



사실,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줄 모른다. 막연하게 '이야기책'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을 뿐, 소설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큰 편은 아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나이에 비해 많은 일을 겪었던 내 삶을 반영한 것 같아 소설 자체를 두려워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상처가 다시 드러나기도 했고, 때로는 소설에 내재되어 있던 메시지 같은 것들이 유난히 따갑게 마음을 찔러대기도 했다. 그런 경험은 나로 하여금 소설책을 멀리하도록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책에 관한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할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주변에 소설을 읽는 사람조차 많이 없다. 누군가에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하면 돌아오는 시선이 생각보다 부담스럽다. 어느 순간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사람, 혹은 남다르게 학구적인 사람 같은 이미지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다. 



어쨌거나,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손에 쥐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나에게만은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쿡 쿡 마음을 찌르던 이야기책들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나도 나의 삶에 있던 크고 작은 밝고 어두운 부분들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좀 더 자주, 좀 더 오래 책을 들여다본다. 읽다 잠들어도 좋을 그런 이야기를 찾아 오늘도 나의 문장을 훑어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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