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의 엄마.
영혼으로도 닿기 어려울지 모를, 입으로 되뇔 일조차 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움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 끝없는 감정 탓에 파도를 맞은 해초들처럼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한동안 그랬다. 일본으로 가기 전 두 사람이 맞이한 그 식사 시간은 짧고도 긴 한 편의 이야기로 남았다. 그게 막연한 그리움의 시작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괴로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나가버린 시간, 내가 몸과 마음을 두었으나 이제는 떠나온 어떤 장소들, 안녕을 나누어 차차 멀어져 간 사람들에 대한 시린 감정들은 일부든 전체로든 어떤 형태로든 마음에 남는다.
나는 그리움이 결코 담백하지 못한 감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를 과거의 존재로 한데 묶어버리고, 심지어는 그 존재들에게 집착하게끔 만드는 나쁜 감정이라고 여겼다. 강인한 사람은 결코 무언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내가 그리움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순간부터 나는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며 늘 날을 세우곤 했다. 주변에 과거의 추억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감정을 따뜻하게 인정해 주지 못했고, 그것이 나의 감정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과거와 또 다른 과거로 이루어진 '나'에게 귀를 기울인다.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을 이해하고, 그래서 과거마저 비로소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나 자신이 바뀌고 나니 그리움은 당연히 내가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그리운 것들을 그리워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 셈이다.
물론, 여전히 그리움을 원망한다.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는 나를 조금은 나약하다 생각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좀 더 칼같이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제는 그리움이 없으면 나의 일부도 바사삭 부서질 것임을 안다. 나도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이루어진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감정을 함부로 짓이길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움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인내하며 미래를 기대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리움을 더 이상 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