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무게의 짐을 지고 여전히 미적지근한 자유에 발을 담그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십 대의 아무런 소용없는 가짜 자유를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 중반에 서 있는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진행형인 무언가를 대하는 자세는 여전히 어정쩡하다. 언젠가부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씩은 '생각이 많은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꼈다. 한마디로 마음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십 대, 그리고 이십 대의 시간 동안에는 이런 소란스러운 마음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이것은 마음의 열병과는 사뭇 다른 문제였다. 생각이 복잡해지니 생활이라도 단순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힘센 문어처럼 발을 뻗어내리는 생각들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점차 복잡해졌다. 생각이 많아지니 말 그대로 두뇌가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신의 복잡함은 때로는 불면의 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짜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내가 아직 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리기 때문에 더욱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빠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하루하루가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제법 어른이 되어버린 오늘의 마음도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세상에 완전한 마음의 고요함이란 있을 수나 있는 것인가.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내 앞으로 붙잡아온다. 굳이 하나하나 확인하기 싫은 그 생각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가끔씩은 마음의 눈이 열려있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씩 마음의 눈을 굳게 감은 사람들을 본다. 혹은 마음의 반응에 다소 둔감한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도 조금 덜 예민했으면 좋겠고, 나도 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단순해지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사실은 단순해지기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도 같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이렇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단순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기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금의 나처럼 글 쓰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에 꽂혀서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스스로 꺼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눈과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보는 눈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그나마 현명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오늘도 마음은 소란 그 자체다. 아무리 누군가가 훼방을 놓아도 마음은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생각이 많은 쪽으로, 더 시끄러운 쪽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수첩에 메모를 하고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35년의 시간 동안 끄적끄적 채워 놓은 일기장만 해도 몇 권이나 된다. 이렇게 기록으로서 생각을 남겨 놓은 것은 잘한 일 같지만, 사실 아직도 소란스러운 마음 앞에서 나의 태도는 어정쩡할 뿐이다. 무럭무럭 생각이 자라날 때, 그리고 그 자라난 생각들이 내게 말을 건넬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마음에 대한 생각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각함으로써 보다 바르게 살 수 있었고 인생의 시간들 또한 좀 더 풍요로웠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컷 불평을 했지만 어쩌면 나는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한,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은 어쩌면 비로소 삶의 의미에 새살이 오르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