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더 이상은 차갑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며 걸음을 옮긴다. 아스팔트를 밟는 느낌이 흙길을 맨발로 밟는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다. 이어폰을 꽂고 있지 않아도 노래가 들리는 듯한 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보면 하늘 아래에 오롯이 봄을 느끼는 내가 있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봄이 기분 좋은 압력으로 나를 꾸욱 눌렀다 뗀다.
비로소 봄이 왔고, 그 봄은 더욱 분명해져 간다. 쉽게 달력의 3을 넘기지 못하던 날도 훌쩍 지났다. 4월의 어느 날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날처럼 반갑고 또 반갑다. 설레는 이 마음을 굳이 숨길 필요도 없이, 모두가 봄의 시간 안에서 선선한 바람을 낸다.
어느 겨울, 이따금씩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봄이 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최대한 좋은 마음으로 좋은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많이 없다. 생각보다 산책도 덜 하고 책도 덜 읽는다. 좋은 생각보다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다. 알약을 삼키며 목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내가 봄에 대한 그 모든 약속을 어긴다 할지라도 봄은 올 수밖에 없다. 훌쩍 오른 낮의 기온은 내가 약속을 잘 지켜서 온 것이 아니니까. 조금 거만하긴 하지만 나는 꼭 봄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래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 약속들을 천천히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좀 더 많이 무언가를 하고, 좀 더 좋은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너무도 간절하기에, 모두가 하나둘씩 마음에 간직한 봄에 대한 맹세와 애착의 감정은 벚꽃처럼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될 것만 같다. 그리고 왠지 그래야만 될 것 같다. 그래야 왠지 그 봄이 더욱 확실해질 거니까. 그리고 그 확실한 봄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